감상의 대상에서 일상의 도구로의 전환

미술 작품

의외로 미술품은 우리 가까이 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미술 작품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공생을위해서는 여전히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이는 공동주택에 설치되는 미술 작품이라는 편견을 벗어나기 위해 작품 선정부터 차별화를 두기로 했다. 법 준수라는 소극적인 접근보다 예술성에 방점을 두는 것은 물론 주변 환경과의 조화와 거주자의 안전을 고려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 작품까지 품기로 했다. 감상과 과시가 아닌 소통과 교감으로의 전환, 이 모든 변화는 거주자에게 시선을 돌리는 일에서 출발한다.

건축과 예술을 넘어 거주자의 시선으로
프랑스 파리 북서쪽에 위치한 상업 신도시 라데팡스La Défense는 건축과 예술 사이에 조용한 혁명을 불러일으킨 사례로 꼽힌다. 빌딩 사이에 자리한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후안 미로Joan Miro,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등의 대형 조각품이 차갑고 삭막한 분위기를 걷어내고 파리의 낭만과 여유를 더한다. 빌딩 사이 공터는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가 되고, 사람이 모여들면서 건물 안팎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프랑스는 1950년대부터 예술 후원 목적으로 건축 비용의 1%를 미술 작품 설치에 사용하면서 건축과 예술의 상생을 고민했고, 그 결과 ‘무엇’보다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주목했다. 정부, 건축가, 예술가, 시민이 함께 건축 예술품을 공공 미술 범주로논의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 파리 북서쪽에 위치한 상업 신도시 라데팡스
우리나라 역시 2011년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을 통해 ‘미술 장식품’이라는 용어를 ‘미술 작품’으로 바꾸어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미술장식품이 예술가의 창작물이 아닌 공공조형물로 시민, 지역, 주변과 어울려야 한다는 의식이 높아진 것이다. 미술 업체를 선정할 때도 행정 편의 주의 심사가 아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해야 한다는 날카로운 지적도 함께했다. 미술관에서 아파트로, 장소만 이동한 예술품이 아니라 마땅히 그 장소에 존재해야 할 작품이길 바란다는 것이다.
거주자의 삶으로 들어가야 하는 공공 미술
건축물 안에 예술품을 효과적으로 대입하는 일을 공공 환경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로 단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미술 비평가 임정희는 신문 인터뷰에서 “작가들도 작품을 혼자 하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도시계획자나 인문학자들과도 교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아티스트 수잔 레이시Suzanne Lacy 또한 <새로운 장르 공공 미술>이라는 책에서 공공 미술이란 예술 조각품이 아닌 자발적 활동을 만드는 일이며, 어떻게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파트와 예술이 ‘동거’를 넘어 ‘공생’을 하려면
건축과 예술 간 연결 고리에서 벗어나
거주자에게 시점을 옮겨야 한다.”
이처럼 아파트와 예술이 ‘동거’를 넘어 ‘공생’을 하려면 건축과 예술 간 연결 고리에서 벗어나 거주자에게 시점을 옮겨야 한다. 건축주는 예술품을 공유 자산으로 생각하고 거주자들이 감상, 유지, 관리하면서 살아갈 미래를 그려야 한다. 주민이 어떤 예술품을 원하는지 그들의 공간에 이익을 줄 수 있는지 먼저 고민할 일이다.

자이가 업체 선정 시점부터 전체 콘셉트, 가격 적정성, 예술성, 안전성, 유지관리 등으로 항목을 나누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려고 노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기적인 오브제가 되기 위해 진부한 기준에서 벗어났다. 특히 예술성 기준이 눈에 띈다. 화려한 장식적 요소, 권태로운 주제, 예술가 유명세 등을 철저히 배제하고 독창성에 큰 점수를 준 것. 덕분에 신진 작가들의 첫 무대가 될 수 있고 다양한 소재를 이용한 여러 장르 예술품이 한 지붕 아래 모일 수 있었다.

킨텍스원시티에 설치한 어호선 작가의 ‘상생의 샘’
기존 아파트 브랜드가 가장 잘 보이는 광장이나 허전한 공터를 메우기 위한 건축 요소로 예술품을 활용했다면 킨텍스원시티는 공원, 놀이터, 담장, 편의 시설 등 각 공간과 작품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주민이 공유할 수 있는 스토리를 더했다. 소위 건축 디자이너와 예술가의 협업이라 볼 수 있는 이유다. 보행자 통로에도 작품이 자리한다. 집으로 향하는 길과 길 사이, 예술품은 짧거나 긴 쉼표로 존재한다. 위압감 없이 겸손하게 다가오는 예술 작품은 개인마다 다른 기억과 의미가 겹쳐지며 ‘머물고 싶은 장소’로 남는다.
매일 달라지는 여백의 공간
머물고 싶은 장소는 사람들이 모이는 이정표이자, 교육적·문화적 가치를 전해주는 미술관이며, 가족이 함께하는 놀이터 역할을 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각자 상황에 따라 쓰임이 달라지는 여백의 공간. 건축가 스티븐 홀이 말한 대로 장소가 상황과 융합되면 비로소 건물은 기능적이며 물리적인 요구 조건을 뛰어넘어 감정과 정서를 논할 수 있게 된다. 현대인에게는 공동 시설이라 할지라도 함께 또는 혼자 머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한 법이다. 여백 공간은 공과 사 사이에 머문다.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가 작품을 관찰할 수도 있지만 뒤로 물러나 확장된 시야로 작품을 즐겨보라.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아파트 풍경을 보게 된다.
신촌그랑자이에 설치한 안재홍 작가의 ‘나를 본다’
서초그랑자이에 설치한 이재효 작가의 ‘0121-1110=115103’
마포프레스티지자이에 설치한 ‘블루밍’
신촌그랑자이와 서초그랑자이는 예술 작품을 이용해 아파트를 자연 풍경의 일부로 녹여냈다. 신촌 그랑자이에 설치한 안재홍 작가의 ‘나를 본다’는 생명을 품은 자연의 숲을 조형미로 풀어낸 작품이다. 나무 줄기에 놓인 파랑새가 마치 눈처럼 보이고 이로써 자연, 예술, 사람이 한 몸이 된다. 숲으로 진입하듯 아파트 통로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서초그랑자이의 예술품은 주변 공간까지 거주 장소로 만들며 사람을 나누고 감싼다. 나뭇가지, 통나무 등 자연물 형태를 이용해 순환의 의미를 담아낸 이재효 작가 브론즈 작품 ‘0121-1110=11510’는 내부를 잇고 맺는 벽과 문이고 푸른 자연이 보이는 창문 역할을 한다. 각자 일상을 연결하는 정신적 장소가 주민들에게 공통분모처럼 생기면 공동체 의식이 움튼다. 얼굴을 맞대고 인사하지 않아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예술적 경험은 그 작품 자체가 아니라
작품을 읽고 바라보고 느끼는 만남에서 일어난다.”
모두의 예술에서 개인의 취향으로
공공 미술이 인터랙티브 아트 영역까지 진화하고 있는 것처럼 자이는 주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작품을 기획한다. 마포프레스티자이에 설치한 ‘블루밍’은 기획은 물론 배치까지 함께 조율했다. 작은 도서관의 녹지에서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상부의 스테인리스는 작가만의 기법으로 더욱 풍부한 빛의 효과를 만들어 내어 공간에 생명력을 더한다.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컬러와 조형성의 유닛들은 마치 숲과 같이 어우러지며 작품과 관람자 사이를 이어 주며 소통하는 관계를 만들어 낸다.

철학자 존 듀이는 “예술적 경험은 그 작품 자체가 아니라 작품을 읽고 바라보고 느끼는 만남에서 일어난다”고 했다. 예술적 의도나 감상법은 보는 이가 경험하고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아파트라는 건물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건물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근본적 가치를 느끼고 거주한다. 공공 예술이 매일 조금씩 개인의 삶으로 파고들면 취향이 자란다. 모두의 예술에서 당신을 위한 예술로. 그렇게 당신의 집과 마음으로 성큼 들어온다.

Editor | AN G
Illust | HK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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