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앞 정원을 누릴 이유 - 자이매거진 | BEYOND A.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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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앞 정원을 누릴 이유

정원 2

지금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자연은 어디인가? 공원도 좋고 가로수가 있는 놀이터도 좋다. 당신이 자연 속에서 머물기 시작하는 20초부터 유익한 호르몬이 생겨난다고 한다. 긴장이 풀어지고 몸과 마음이 편해진다. 시간을 잊게 된다. 사실 인간이 정원을 왜 만들었는지, 요즘 정원의 동향은 무엇인지, 그런 것쯤 몰라도 된다. 그저 밖으로 나가서 나무 둘레를, 싹 틔울 준비를 하는 땅을 걸을 수 있다면 그만이다.

정원 2

인간을 회복시키는 숲

햇빛이 비치는 밖으로 나서는 것만으로도 울적한 기분이 어느 정도 나아진다. 집이나 사무실로부터 멀리 떨어진 평화로운 장소라면 기분은 더욱 빠르게 가벼워질 것이다. 미국의 환경 심리학자 레이철 캐플런과 스티븐 캐플런은 ‘주의회복이론’을 통해 정신적으로 고갈되거나 감정이 과잉됐을 때 자연과 교감하면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회복된다는 걸 증명했다. 그렇다고 영화 <리틀 포레스트> 주인공처럼 훌쩍 시골로 떠나가서 살 수도 없는 일이다. 번잡한 일상 속에서도 짬을 내어 자연을 맘껏 누릴 방법은 없을까?

김포 자이더빌리지 정원

가장 먼저 할 일은 집 주변에 있는 초록색을 낱낱이 찾아내는 일이다. 집 안의 작은 화분에서 시작해 야트막한 동산, 하천 주변의 생태 공원 등 그 위치를 알아보고 자주 들르는 것이다. 외출 후 집으로 들어올 때, 재택근무를 하다가 30분씩 시간을 내서 그 장소를 걸으면 이보다 더 좋은 환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강박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린 <리틀 포레스트>의 이치코가 아니니까. 외면하고 온 책상 위에는 며칠 내 끝내야 하는 ‘미션’들이 어른거린다.

동천자이2차

인간이 담장을 치고 만들어낸 예술 공간으로서
정원은 제3의 자연이다.

가장 만만하면서 가장 예술적인 아파트 정원

그러니 아파트 정원만큼 만만한 곳도 없다. 현관문을 열고 그저 밖으로 몇 걸음만 옮기면 되니 말이다. 정갈하게 관리된 정원은 산책하고 공상하기에 제격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정원은 완전한 자연이 아니다. 오경아 가든 디자이너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원은 ‘자연스러울 수는 있으나 자연 그 자체가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예술 공간’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18세기 영국식 픽처레스크 정원을 들 수 있다. ‘그림같은 풍경’을 뜻하는 픽처레스크 정원은 낭만주의와 자연주의 사상, 인간의 창조 욕구가 만들어낸 정원이다. 그것의 아름다움은 영국의 시인 조지프 애디슨, 화가 클로드 로랭 등을 매료시켜 훌륭한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는 영감이 되기도 했다.

정원은 크게 동양과 서양의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서양의 정원은 꽃이 중심이 되는 화훼 정원으로 색감의 개성이 넘치고 수목을 리드미컬하게 배식하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동아시아의 정원은 율동성을 강조하기보다 산수에서 마음의 평정을 얻으려는 목적이 뚜렷하다. 특히 한국의 정원은 ‘원정’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한데, 주택에 포함된 가원과 마을의 정자를 아우르는 더 넓은 공간을 의미한다. 오랜 역사 속에서 한국인이 꽃나무를 대하는 태도는 주변국에 비해 방관적이라고 한다. 사람의 눈에 보기 좋게 수목을 다듬고 정리하기보다 본래의 질서대로 자라게 두는 편이기 때문이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몰 제19호 명월팽나무군락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DMC에코자이 정원의 상징수

제주 팽나무와 화산송이가 있는 신비로운 정원

주거 브랜드 ‘자이’의 대표적 정원인 엘리시안 가든은 정원의 핵심인 예술적 면모와 한국인이 가장 편하게 느끼는 원정의 모습이 조화롭게 녹아 있다. 엘리시안 가든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소규모의 고급스러운 룸 가든을 지향하면서도 숲과 암석이 뒤섞인 생태 그 자체를 들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그린 알파룸은 주민들이 사적인 커뮤니티 장소로 활용하거나 더욱 편히 쉴 수 있도록 고급 호텔의 스타일에서 착안했다. 동시에 제주의 곶자왈을 모티브로 하여 곶자왈의 대표 수종인 녹나무와 팽나무를 자연 상태 그대로 정원으로 옮겼다. 팽나무는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던 정자목이다. 굵은 나뭇가지들이 힘찬 기상으로 자라며 신비로운 정원 분위기를 만든다. 또 제주의 팽나무 숲에 와 있는 듯 천혜의 자연을 연출하기 위해 그 장소에서 자라난 이끼, 바위, 화산송이 등을 함께 배식했다. 이는 팽나무가 생태적으로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이 되어준다.

집 앞에 언제나 서 있는 나무의 이름부터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사소한 관계가 당신이 매일같이 정원을 산책해야 할
작고 분명한 계기가 되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몇 년 전부터 집 안과 밖에서 식물을 키우는 가드닝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자연과 함께 있으면 긴장감이 낮아지고, 그것을 돌보는 데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괴로운 마음에서 멀어진다. 지금 당장 씨앗을 심고 줄기가 자랄 때까지 지켜볼 여력이 없다면 집 앞에 언제나 서 있는 나무의 이름부터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 나무가 어떤 종류인지, 어떤 꽃을 피우는지 알아차리는 순간 가드닝만큼 애틋한 관계가 싹틀 것이다. 사소한 관계가 당신이 매일같이 정원을 산책해야 할 작고 분명한 계기가 되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정원을 제대로 누릴 준비가 되었는지 묻고 싶다.

(참고 문헌)
<풍경으로 본 동아시아 정원의 미>, 박은영
‘정원 일에 열중할 때 시간의 흐름을 잊게 되는 이유’, 해리엇 그로스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와 함께하는 정원 이야기>, ‘정원의 역사’, 오경아

Editor | KK Baek
Photography | GSENC
Illust | HK 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