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유토피아’라고 하면 완벽한 낙원을 떠올린다.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해 보면, 유토피아는 결국 현실의 부족한 점들이 모두 채워진 사회, 즉 현재의 결핍에서 출발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집과 도시는 무엇이 부족하고, 또 그것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2026년 2월, 스페인 빌바오·도노스티아(산세바스티안)·비토리아-가스테이스에서 열린 제5회 무각-바스크 국제건축비엔날레는 ‘공중누각, 혹은 오늘날 유토피아를 짓는 방법’을 주제로, 오늘의 집과 도시를 다시 상상하는 건축·공간 실험을 선보였다.

도노스티아(산세바스티안)에 등장한 이사스쿤 친치야의 설치 작업물은 오늘날 우리에게 유토피아를 어떻게 상상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Bienal Mugak
건축이 그려 온 유토피아의 풍경: 메인 전시 ⟪Eu-topias, Ou-topias⟫
메인 전시에서는 새로운 사회를 상상해온 12팀의 건축 프로젝트를 살핀다.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작업을 아울러 소개하며 시대마다 어떤 사회를 꿈꿔왔는지를 보여준다. 그중 건축가 피터 쿡이 1961년에 제안한 <플러그-인 시티>와, <필터 시티>는 도시를 필요에 따라 교체되고 확장되는 시스템으로 본다. 두 프로젝트 모두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도시 계획이 마스터플랜을 중심으로 한 ‘고정된 도시’가 기본이었음을 고려한다면, 그의 작업은 오래도록 따랐던 도시 질서와 사회 구조를 뒤바꾸는 생각이었다.

유토피아의 의미를 담은 프로젝트를 선보인 비엔날레의 메인 전시 이미지 ©Bienal Mugak
메인 전시에서는 새로운 사회를 상상해온 12팀의 건축 프로젝트를 살핀다.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작업을 아울러 소개하며 시대마다 어떤 사회를 꿈꿔왔는지를 보여준다. 그중 건축가 피터 쿡이 1961년에 제안한 <플러그-인 시티>와, <필터 시티>는 도시를 필요에 따라 교체되고 확장되는 시스템으로 본다. 두 프로젝트 모두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도시 계획이 마스터플랜을 중심으로 한 ‘고정된 도시’가 기본이었음을 고려한다면, 그의 작업은 오래도록 따랐던 도시 질서와 사회 구조를 뒤바꾸는 생각이었다.

피터 쿡은 <플러그-인 시티>와 <필터 시티> 작품을 통해 확장되는 도시를 표현했다. ©Bienal Mugak
한편, 오늘날의 작업으로 소개된 존 포럴의 <더 베드룸 스크립트>는 관람객이 자신이 원하는 집 또는 방을 직접 그리면, 알고리즘이 그 그림을 바탕으로 공간과 가구가 배치된 평면도를 자동 생성하는 인터랙티브 작품이다. 작가는 디지털 기술이 단순히 부동산 효율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의 질과 복지를 높이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관람객 개개인이 원하는 공간을 자동 생성해서 보여주는 존 포럴의 <더 베드룸 스크립트>©Bienal Mugak
집을 고치고 도시를 바꾸는 힘: 빌바오 파빌리온 <에체노이>
AMA 아키텍처럴 오피스가 빌바오에 설치한 <에체노이>는 유토피아를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집의 문제로 다룬다. 오늘날 주거 리노베이션은 유행에 따라 빠르게 교체되고 소비되는 ‘패스트 패션’과 닮아 있다. 필요에 따른 수리가 아니라, 일순간의 유행과 취향에 따른 집 고치기는 많은 쓰레기를 발생시켜 사회적 책임의 문제로 이어진다.

AMA 아키텍처럴 오피스의 <에체노이>는 유행에 따라 빠르게 바뀌는 트렌드에 대한 비판을 담아 재활용 자재를 활용해 파빌리온을 완성했다. ©Bienal Mugak
AMA 아키텍처럴 오피스는 주거 리노베이션이 자원과 도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빌려온 파이프와 공사용 철제 패널, 그물망 등 재활용 자재로 파빌리온을 만들고, 내부에서는 건설 폐기물을 다룬 전시를 진행했다. 새로운 재료를 생산하는 대신에 빌려 쓰고 다시 돌려주는 방식은 지금의 소비 중심 리노베이션 문화에서 벗어난다. <에체노아>는 공간을 통해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가 어떻게 고치냐에 따라 도시의 모습도 달라진다고.
“우리 집 안의 많은 변화는 매 시즌 제품을 바꾸는 대기업에 의해 주도됩니다.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이 현상은 도시를 구성하는 다양한 건물과 공공 공간으로까지 확장되죠. 많은 공간이 접근성, 열적 쾌적성, 미래 변화에 대한 적응성과 같은 더 중요한 부분은 개선하지 않으면서, 일종의 도시 ‘성형 수술’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를 돌보는 도시 공간: 도노스티아 파빌리온<가벼움과 고발>
이사스쿤 친치야 아키텍츠가 설계한 파빌리온은 ‘바느질’이라는 행위를 건축 언어로 풀어낸다. 역사적으로 유토피아 담론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돌봄과 노동, 연대와 같은 경험을 유토피아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가볍고 유연한 구조로 이루어진 열린 공간에서 시민들은 모이고, 대화하고, 의견을 남긴다. 이곳에서 유토피아는 이미 완성된 모습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 속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된다.

이사스쿤 친치야 아키텍츠의 <가벼움과 고발>은 바느질을 건축 형태로 표현했다 ©Bienal Mugak
“이 파빌리온은 수직적 담론과 기술·관료적 해결책보다 수작업과 참여의 정치적 가치를 드러낸다. 유토피아를 약속하지는 않아도, 우리가 공유하는 공통의 토대 위에서 한 땀 한 땀 그 천국을 함께 쌓아가도록 초대한다. 수많은 손으로 꿰매어지는 유토피아, 그곳에서 도시의 다른 형태를 상상하는 것은 세상 속에서 함께 존재하는 새로운 방식을 상상하는 일이다.”
누구를 위한 유토피아인가: 비토리아-가스테이스 파빌리온 <유토피아: 진입금지>
1961년부터 1989년까지 베를린 장벽이 도시를 가로막고 있었을 때, 누군가에게 유토피아는 언제나 벽 너머에 있는 곳, 끝내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비토리아-가스테이스 광장 한가운데에 설치한 장벽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Bienal Mugak
건축가 세바스티안 바요는 유토피아의 이 어두운 면을 광장 한가운데 ‘장벽’을 세워 물리적으로 가시화했다. 이동을 막고 시선을 차단하는 구조물 <유토피아: 진입금지>는 언제든 배제와 통제로 변할 수 있는 유토피아를 나타내며, 오늘날 현실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을 생각해 보게끔 한다.

광장에 설치한 세바스티안 바요의 작품 <유토피아: 진입금지>는 전시가 종료되면 해체되어 여러 장소로 옮겨진다 ©Bienal Mugak
길이 70m, 높이 4m에 달하는 벽은 광장 한가운데에 설치돼 통행과 시야를 제한하는 동시에, 시민 참여의 장이 된다. 전시되는 동안 벽은 시민이 원하는 대로 벽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다양한 활동의 플랫폼이 되기도 했다.
전시가 완료되면 파빌리온은 해체되어 여러 장소로 옮겨질 예정이다. 그리고 베를린 장벽의 파편들처럼 살아있는 기억으로서, 경고장과 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유토피아는 누구에게 허락되는 공간인가? 그리고 그 경계는 누가 정하는가?
WRITER | GR H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