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공동주택 커뮤니티 초석의 역할
하교하는 시간이 되면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북적거리는 곳은 단연 놀이터다. 국토교통부와 한국주거학회의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주택 건설 기준 개선’ 자료에 따르면 현재 아파트에 사는 주민은 여러 시설 중 놀이터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또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 사용하는 시설로도 가장 많은 응답자인 40%가 놀이터라 답했다. 아파트 시설 중에서도 이용률이 가장 높을뿐더러 삶의 질을 높여주는 커뮤니티로서 그 초석이 되는 장소이기에 놀이터는 좋은 아파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디자인스튜디오 TCL이 2013년 오스트레일리아에 만든 놀이터로 거대한 도토리 모양을 모티브로 디자인했다. / tcl.net.au
한국 놀이터는 판박이다
“한국 놀이터는 판박이다” 지난 2014년 독일의 유명한 놀이터 디자이너 권터 벨치히가 한국의 놀이터를 둘러본 뒤에 했던 말이다. 전 세계의 놀이터를 방문하며 실제로 여러 놀이터를 디자인해온 그에게 한국의 놀이터는 그저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진 비슷한 모양의 놀이터였던 것. 어린이들을 위한 재미있는 놀이터가 되려면 어느 정도의 위험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그런 상황 속에서 오히려 자기 결정권을 갖고 더 흥미로운 모험을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일침은 좋은 놀이터의 모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몇 년간 놀이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온 자이는 어떤 모습의 놀이터를 만들고 있을까?
아파트 시설 중 놀이터는 삶의 질을 높여주는
커뮤니티로서의 초석이 되는 장소이다.
자이가 놀이터를 ‘펀그라운드’라 부르는 이유
펀그라운드는 자이가 만든 놀이터를 일컫는 말이다. 펀그라운드는 그네나 미끄럼틀 같은 시설 위주의 놀이터가 아닌 어린이들의 교육과 커뮤니티를 도모할 수 있는 복합적 공간에 더 가깝다. 이를 위해 단순히 놀이 시설만 설치하는 게 아니라 녹지 공간, 휴식 공간, 운동 공간, 놀이 공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설계 초기 단계부터 펀그라운드의 공간을 계획한다. 또한 이곳의 주인을 어린이들에 한정 짓지 않고 어린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어른들, 휴식과 환기가 필요한 어른들까지 그 대상을 넓혔다. 예를 들면 아름드리 나무 그날 아래서 놀이를 한다거나 온 가족이 함께 여가를 즐기고 쉴 수 있도록 가장 좋은 터에 ‘통합적인’ 놀이 공간을 들이는 식이다.
펀그라운드라는 명칭에서도 그 의미가 잘 드러나는데, 놀이터가 어린이들의 ‘놀이’에 집중했다면 ‘펀’이라는 단어 속에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까지 각자의 재미와 쉼을 찾길 바라는 의미를 더했다. 영국의 ‘국가 아동 놀이 정책’에는 놀이터에 관한 원칙이 있다. 지역사회에서 가장 좋은 곳에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어린이들이 접근하기 쉬워야 하고 놀이터에 오기까지의 환경 또한 안전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자이 역시 어린이들이 안전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공간이자 입주민들이 커뮤니티를 이루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펀그라운드를 짓는다. 자이가 아파트를 건설하는 지역의 특색에 맞춰 해당 단지에 가장 잘 맞는 놀이터 디자인을 전문 파트너사와 함께 새롭게 기획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일하게 만든 놀이터를 각 단지에 기계적으로 넣는 게 아니라 디자인 전문 파트너사와 함께 그 마을의 분위기, 지역적 특색 등 다양한 지점을 고려해 해당 단지만을 위한 맞춤형 놀이터를 만들어낸다.
동화 <앨리스의 모험>을 모티브로 만든 청주센트럴자이 놀이터 ‘키즈길’ 중 일부
모두를 위한 놀이 공간
놀이터의 기능은 무궁무진하다. 어린이들의 감각을 발달시키고 정서 순화에 도움을 주며 모험심과 창의력을 증진한다. 이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끼리 서로 어울려 놀면서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규칙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동시에 놀이터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까지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놀이 기구, 자연물과 어우러진 개성 넘치는 놀이터의 모습은 어른과 어린이 모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놀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준다.
어린이들은 미끄럼틀과 그네 같은 고정된 놀이 시설만 이용하는 게 아니라 빈 공간과 지형 시설에서 더 다양한 놀이를 한다. 청주센트럴자이는 ‘길’이라는 빈 공간이 주인공인 놀이터다. 개별적으로 떨어져 있는 일반적인 놀이터를 ‘키즈길’이라는 하나의 길로 엮어서 어린이들이 연속적인 모험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키즈길이 엮는 스팟은 총 4가지로, 동화 <앨리스의 모험>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마법의 나무놀이터는 동화 속의 시계토끼를 찾아서 떠나는 모험의 도입부로 나뭇잎 계단이나 조형물, 징검다리 등 다양한 지형을 활용해서 놀 수 있는 공간이다. 화산석, 나무 등 자연친화적인 소재를 사용하였으며 놀이터 주변으로 소나무, 청단풍 등의 풍성한 조경을 심어서 놀이터이자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거닐기에도 좋다. 이 외에도 이상한나라 놀이터, 앨리스 모험정원, 여왕의 미로정원이 연결되어 있어서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흥미로운 모험을 떠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고덕자이 ‘이야기숲’ 구조물
고덕자이 ‘이야기숲’ 구조물
놀이를 상상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캔버스
프랑스 사회학자 로제 카유아가 말했듯 놀이의 본질은 현실 생활과 동떨어진 공상과 허구의 세계다. 좋은 놀이터라면 어린이들에게 공상과 허구에서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터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그곳이 신나는 무대가 되려면 무조건 독창적이고 화려한 시설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상상력이 싹틀 수 있는 여백도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고덕자이의 ‘이야기 숲’은 동화책을 모티브로 어린이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자루와 이루가 주인공인 이 동화에선 두 주인공이 강아지 럭키를 데리고 떠나는 모험이 주된 내용이다. 동화의 줄거리대로 이야기 숲을 따라가면 요정들이 사는 집, 얼음나무, 낮잠을 좋아하는 곰곰이의 서재, 마법사 등을 만나게 된다. 모험이라는 커다란 테마 아래 어린이들은 특별한 장소에서 자신만의 규칙대로 새로운 놀이를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화가 주는 교훈을 직접 몸을 움직이고 놀면서 자연스럽게 깨우칠 수 있다.
증강현실을 활용한 서초그랑자이 놀이터 ‘차원의 숲’
서초그랑자이 놀이터 ‘차원의 숲’. 외계 행성 원주민 ’엘리시안’의 분리수거 관련 스토리 진행 중.
놀이터는 이런 변화의 상황에
맞춰서 함께 성장해야 한다.
미래의 주인공을 위한 공간
최근 모바일 게임 ‘포켓몬고’는 증강 현실을 가미하여 매일 보던 공간과 건물이 흥미로운 게임 속 배경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물리적 공간이 아닌 가상의 공간까지 놀이 공간이자 교육 공간으로 주목 받고 있다. 자이는 이런 추세에 발맞춰 어린이들이 매일 같이 보는 아파트나 놀이터에 지루함을 갖지 않도록 증강현실을 이용해 외계 행성에서 일어나는 일을 놀이학습 콘텐츠 서비스로 선보였다. 서초그랑자이 단지 내의 놀이터 ‘차원의 숲’에서 동명의 앱을 켜고 픽토그램을 인식시키면 4가지의 재미있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번갯불에 타버린 외계 행성의 만주 나무 숲을 되살리기 위해 땅을 파고 묘목을 심거나 외계 동물 스테그에게 밥을 주고 놀아주는 게임 등이 있다. 어린이들은 게임이라는 매체로 가상의 놀이터에서 놀면서 자연스럽게 환경과 돌봄에 대해서도 그 가치를 배울 수 있다.
어린이들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변하고 달라진다. 일과에 떠밀려 노는 시간이 줄어드는 건 예삿일이고 요즘은 코로나 19라는 상황 속에서 친구들을 만나서 함께 어울려 노는 게 특별한 일이 되었다. 놀이터는 이런 변화의 상황에 맞춰서 함께 성장해야 한다. 한 곳에 여러 명이 몰려서 놀 수 있는 구조보다 일정 거리를 둔 작지만 흥미로운 디자인의 놀이터를 연결하거나 어린이들이 주체적으로 놀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지형을 이용한 놀이터를 만드는 일들이 그런 변화의 일부일 것이다. 하지만 변해서는 안 될 한 가지가 있다면 놀이터가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안식처이자 즐거운 공간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이는 지금의 놀이터에 필요한 변화와 놀이터가 지녀야 할 불변의 가치 속에서 균형과 성장을 도모하는 중이다.
Editor | KK Baek
Illust | HK 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