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디지털 아티스트가 픽셀로 그린 그림이 천문학적인 금액에 팔리고,
브랜드들은 NFT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는 소식만으로 주가가 요동친다.
암호화폐에 이어 이제 NFT에 투자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누구나 자신만의 NFT를 만들어 수익을 낼 수 있다는데, 도대체 NFT가 뭐길래?
대체 불가능
NFT는 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한 토큰)의 줄임말이다. 대체 불가능하다는 말은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라는 의미다. 1000원 지폐는 다른 1000원권과, 1비트코인(BTC)은 다른 1비트코인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며 ‘대체’ 가능하지만, NFT는 각각의 가치가 모두 다르기에 서로 대체할 수 없다. 암호화폐처럼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NFT는 거래 기록이 투명하게 공유되며, 각각이 지닌 가치에 따라 자유롭게 거래하거나 기증할 수 있다.
NFT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디지털 자산을 거래하는 데 신뢰할 수 있는 인증서 역할을 하는 최초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파일로 된 이미지나 동영상은 누구나 복제하고 저장할 수 있기에 예술 작품으로 거래되려면 소유와 거래 내역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 문제를 해결한 것이 거래 기록이 투명하게 기록되고 위조와 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이었고, 그중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NFT였다.이더리움을 기반으로 하는 NFT는 일반 암호화폐와 달리 다양한 부가 기능을 덧붙일 수 있는데, 사진이나 아트 토이처럼 한정판 에디션으로 그 권리를 나눌 수 있고, 거래될 때마다 일정 비율로 제작자가 수익을 가져갈 수도 있다.
PAK
‘PAK’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가? 생존 아티스트 중 옥션 최고가를 기록한 작가는 제프 쿤스, 데미언 허스트, 데이비드 호크니 같은 유명 아티스트가 아닌 디자이너이자 디지털 아티스트인 ‘PAK’다. ‘PAK’의 NFT 디지털 아트 ‘Merge’가 작년 12월 NFT 플랫폼 ‘니프티 게이트웨이’가 주최한 온라인 옥션에서 총액 9,180만 달러(한화 약 1,095억 원)에 판매된 것. 검은 배경에 흰색 구 하나가 덩그러니 놓인 디지털 아트 작품 ‘Merge’는 작품 형식만큼이나 경매와 소유 방식도 이전 예술 작품과는 완전히 달랐다. 경매가 진행되는 48시간 동안 경매 입찰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오르는 ‘유닛’이라는 단위를 무제한 구매할 수 있으며, 그렇게 다수의 입찰자가 구매한 유닛이 모여 ‘Merge’라는 작품을 완성하는 것. 전무후무한 ‘Merge’ 경매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48시간 동안 무려 28,983명의 컬렉터가 ‘Merge’를 구성하는 312,686개의 유닛을 구매했고, 총 판매 금액은 9,180만 달러에 이르렀다. 디지털 아트가 기존 메인스트림 아트를 능가하게 된 이 전무후무한 사건은 NFT라는 혁신 기술을 통해 가능해진 변화다.
고양이와 원숭이
암호화폐의 일종인 이더리움 기반의 첫 NFT 토큰이 발행된 2017년, 캐나다의 스타트업 대퍼랩스는 고양이 육성 게임 ‘크립토키티(Crypto Kitties)’를 개발했다. 게임 유저들은 랜덤으로 생성되는 고양이 이미지를 수집하고 NFT를 통해 거래할 수 있는데, 모든 고양이는 고유한 특성으로 유일하며, 눈에 띄는 특성을 지닌 고양이 이미지에는 엄청난 가격이 붙는다. 현재 가장 높은 가격이 책정된 NFT인 ‘크립토키티 드래곤’ 역시 크립토키티를 통해 생성된 고양이 중 하나로, 10억 원 이상에 거래되고 있다.
초기 NFT 열풍을 고양이가 이끌었다면 최근 가장 있기 있는 NFT는 원숭이다. 글로벌 최대 NFT 마켓인 ‘오픈씨(Open Sea)’를 통해 작년 4월 처음 등장한 ‘보어드 에이프 요트 클럽(Bored Ape Yacht Club)’은 표정, 의상, 헤어스타일 등 다양한 특성을 조합해 랜덤하게 생성되는 ‘지루한 원숭이’ 초상화 이미지를 NFT로 거래하는 프로젝트. 단순히 이미지를 소유하는 것을 넘어 NFT 소유자만 참여할 수 있는 커뮤니티 활동을 활성화하고, 자기가 가진 초상화 이미지를 SNS 프로필 이미지로 활용하게 하면서 NFT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그 결과, 출시한지 1년도 안 됐지만 보어드 에이프 요트 클럽의 총 거래액이 1조 원을 훌쩍 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웹 3.0
NFT는 사용자가 중심이 되는 ‘웹 3.0’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상징한다. 웹 3.0은 데이터가 분산화되어 저장되고, 데이터 소유권을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차세대 인터넷 환경을 의미하는 용어다. 일방적으로 정보가 전달되는 웹 1.0, 사용자도 정보를 생산하지만 해당 데이터에 대한 권리를 갖지 못했던 웹 2.0과 달리, 웹 3.0에서는 블록체인 기술과 NFT를 통해 자신이 생산한 데이터에 대한 권리를 온전히 증명하고 수익을 얻거나 거래할 수 있게 된 것. 앞서 보어드 에이프 요트 클럽의 예처럼 NFT는 특정 이미지를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할 수 있기에 ‘디지털 신분증’ 역할을 겸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금도 비용과 의지가 있다면 누구나 NFT를 등록하고 만들 수 있다. 이런 과정을 민팅(minting)이라고 한다. 오픈씨와 레리블 같은 해외 플랫폼은 물론, 클레이민트라는 국내 플랫폼에서도 언어의 장벽 없이 이미지, 영상, 음원 등 다양한 콘텐츠를 NFT로 자유롭게 등록하고 판매할 수 있다. 누구나 손쉽게 NFT를 민팅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디지털 아트와 게임 아이템 등의 거래에 주로 쓰이던 NFT가 음악과 패션 등 엔터테인먼트 전반, 심지어 부동산으로까지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오프라인
NFT는 디지털 세계를 벗어나 오프라인으로도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올가을 뉴욕 맨해튼에서는 NFT가 회원권 역할을 하는 최초의 NFT 레스토랑 ‘플라이피시클럽(Flyfish Club)’이 문을 열 예정이다. 아무나 입장할 수 없는 이 프라이빗 멤버십 레스토랑의 회원권을 블록체인 기반의 NFT 인증서를 통해 판매하는 것.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VCR 그룹은 레스토랑이 문을 열기도 전에 멤버십 회원권 역할을 하는 1501개의 토큰을 가상화폐 이더리움을 통해 판매해 1,500만 달러(약 18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현재 플라이피시클럽 회원권은 NFT 플랫폼 오픈씨를 통해 거래되고 있는데, 최초 판매가에서 50% 이상의 프리미엄이 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 각종 이벤트와 음악 콘서트 등에서도 기존 입장권이 지닌 여러 문제를 혁신적으로 대체하는 수단으로 NFT가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예측된다.
NFT는 아직 초기 단계 기술이지만 무궁무진한 활용 가능성을 갖고 있다. 디지털 아트를 거래하는 컬렉터들 외에도 게임과 메타버스 등을 통해 거래되는 모든 디지털 자산을 안전하게 소유하고 거래하는 수단으로, 오프라인에서는 회원권과 입장권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메타버스의 활성화와 함께 가상 공간의 소유권을 사고 파는 가상 부동산 거래가 NFT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실제 부동산의 경우에도 숙박권과 부대시설 이용권 등 다양한 부동산 관련 자산을 NFT로 만들어 실물과 가상 자산을 연결하는 시도를 다양한 국내외 플랫폼에서 시도 중이다. 이렇게 NTF는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의 생활에 새로운 가치를 더해가며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WRITER | KY CHUNG
ILLUSTRATOR | MALLANGL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