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은 사적인 공간이고 절반은 외부로 열려 있는 공간이기에 나와 가족은 물론 적정선의 사회적 관계까지 끌어안을 수 있다.”(EDITION ‘소통의 밀도를 높이는 기술’ 참고) 이처럼 테라스는 사적이며 공적인 영역으로, 고립과 공존이 가능한 지대로 여겨지고 있다. 작가 최유라가 자신의 집 테라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이와 닮아 있다. 그는 홀로 영감을 얻고 조용히 쉬는 공간으로, 때로는 가족이 만나 교감하고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는 공간으로 테라스를 쓴다. 그에게 테라스란 내면의 힘을 충전하는 장소이자 타인과의 관계를 쌓는 장소인 것이다.
최유라는 글을 쓰고 영상을 기획하는 밀레니얼 세대 크리에이터다. 집은 곧 그의 일터이자 휴식처로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르는 장소인데, 그는 집에서의 생활을 지루하게 느낀 적이 없다고 했다. 괜스레 따분해질 때면 잠시 바람을 쐬거나 텐트에 누워 있거나 혹은 노트북만 챙겨 나가 새로운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는 테라스가 있으니 든든하다고 말이다. “가족과 주말마다 테라스에 모여 브런치를 먹고 산책을 나가는 게 기분 좋은 일과”라고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바깥에 나가지 않아도 집에서 다채로운 일상을 보내고 일상에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 테라스에 있었다.
가족 형태 | 부모님과 자녀 2인
지역 |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공급 면적/전용 면적 | 164.09㎡/118.24㎡
거주 기간 | 약 2년
이 집과의 첫 만남은 어땠나요?
부모님께서 집을 정하고 알려주셨어요. 저희 가족은 비교적 이사를 자주 다닌 편인데, 그때마다 언니와 저는 부모님 의견을 순순히 따랐어요. DMC에코자이를 처음 소개해주실 때 “테라스가 있는 집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만 기억나요. 그때도 그냥 ‘우리 집이 또 이사를 가나 보다’ 하는 정도로 여겼어요. 저는 집이라는 공간에 크게 애정이 있는 편은 아니었어요. 얼마나 무뎠냐면 이삿날에도 가장 늦게 집에 등장해 이삿짐 센터 직원분들이 “둘째 따님은 아직도 안 왔어요?”라고 되레 저를 찾았다고 해요. 민망한 일이죠.(웃음) 방을 정할 때도 마지막 남은 방이 내 방이겠거니 했답니다.
그토록 집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어쩌다 집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나요?
이사를 결정한 이유가 있었어요. 지금은 식구가 다 모여 살지만 그 전에는 부모님과 저는 분당에 살고, 언니는 직장이 있는 디지털미디어시티역 근처에서 자취했거든요. 그러던 차에 언니가 서른이 되니까 부모님께서 ‘이제 큰딸이 결혼하면 한 지붕 아래서 살 날이 없겠다’는 생각을 번뜩 하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바로 이 주변으로 집을 알아보신 거죠. 2019년 12월에 입주했어요. 공교롭게도 그 후로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됐고,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한층 더 많아지면서 제가 집을 대하는 태도나 생각도 자란 것 같아요.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한층 더 많아지면서
제가 집을 대하는 태도나 생각도 자란 것 같아요.”
이곳에 이사 온 뒤로 가장 크게 바뀐 일상은요?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이제는 ‘책임과 보호’가 아닌 ‘존중과 평등’으로 바뀐 것 같아요. 우리 가족은 친구처럼 지내요. 서로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됐어요. 일요일마다 테라스에 모여 브런치를 먹으며 이야기하고, 그 분위기가 이어져 자연스레 단지 산책도 같이 나가고, 또 테라스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저도 가족, 나아가 집에 애착이 생긴 것 같고요.
테라스가 불러온 일상의 변화군요.
정말로 테라스가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처음 인조 잔디 매트를 깔 때도 얼마나 재미있었는데요. 크기를 재고, 어떤 매트를 고를지 회의하고, 어느 쇼핑몰에서 구매할지 따져보고, 설치까지 함께 했죠. 또 그 모습을 공유하고 싶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게시 글을 본 친구들이 놀러 오겠다고 관심을 보이면 그것도 그렇게 좋고 뿌듯할 수가 없었어요. 그게 다 추억이라 테라스는 우리 가족이 함께 가꾼 공간, 함께 모이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아요.
화목한 가정이네요. 원래 그랬던 건 아닌가요?
확실히 이곳으로 이사 온 뒤로 관계가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대화하는 빈도가 이만큼 많지 않았거든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집 구조가 바뀌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전에 살던 집은 오래된 아파트였는데, 작은 평수가 아니었는데도 괜히 비좁고 죽은 공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집에 오래 있으면 왠지 모르게 불편했어요. 그런데 이 집은 무작정 넓은 거실보다 적절한 크기의 방을 여러 개 만들어서 어느 방에 있어도 답답하지 않아요. 덕분에 집에 있는 시간이 불편하지 않고요. 각자의 공간에서 충분히 개인 시간을 보낼 수 있기에 함께 만났을 때 더 집중하고 돈독해지는 것 같아요.
테라스마다 이름을 지었다고 들었어요.
거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테라스를 ‘정월드’라고 불러요. 엄마 이름 ‘현정’의 끝음절을 따서 만든 이름인데, 엄마의 원예 공간이죠. 가꾼 식물을 소분해서 친구분들께 나눠주기도 하고 (엄마가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한두 개씩 당근마켓에 팔기도 하세요. 저는 그게 너무 귀여워요.(웃음) 예전 집에서는 그럴 여건이 안 됐는데 여기 와서 날개를 펼친 셈이죠. 엄마가 ‘원예를 시작하고 인상이 밝아졌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대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딸로서 정말 기분이 좋아요. 코로나 블루와 함께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자신만의 방법으로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언니 이름을 딴 ‘소라바’는 우리 가족이 즐겨 모이는 마당 같은 곳이에요. 바비큐 파티나 감성 캠핑 등 그때그때 공간 쓰임새를 바꿔 활용해요. 그래서 저희는 감사하게도 집에만 있으면서도 답답한지 모르고 지냈어요.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말이 없어요.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활동 반경은 아파트 단지 정도예요. 정말로 집 위주의 생활을 하고 있어요. 집필 기간에는 집 아니면 아파트 상가의 스타벅스를 주로 가고요. 친구를 만날 때도 번잡한 카페에 가는 것보다 아파트 단지를 선호해요. 잘 가꿔진 조경과 곳곳에 마련된 쉼터가 있어서, 또 요즘에는 카페 메뉴도 모두 배달되는 터라 단지에서 친구들을 만나요. 제주도에서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어서 가끔 김포공항을 통해 제주도를 오가는 것이 전부죠.
거의 아파트에서만 살았다고 했어요. 그러면 현대식 아파트의 변화도 체감할 것 같아요.
아파트에 살면서 ‘이건 이렇게 바뀔 수 없나’ 하고 한 번쯤 상상해본 것들이 거의 다 구현되어 있어서 신기해요. 집 안에서 엘리베이터 호출하기, 일괄 소등하기, 깔끔한 빌트인 등등 이런 건 다들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네’ 했을 거예요. 이제는 다음 단계에 접어든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하는 부분이 보여요. 디테일에 강해요. 그런데 그 디테일이란 게 거센 파도처럼 강력한 에너지의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은근한 물살처럼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와요. 오히려 ‘이걸 나만 아는 걸까?’ 이런 생각도 들어요.
최유라에게 집이란 어떤 공간인가요?
학창 시절에 심리적으로 방황할 때면 부모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학교나 학원이 너를 힘들게 해도 집에서만큼은 쉬어가면 좋겠다. 집이 쉼터가 되면 좋겠다.” 사실 그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제 저도 나이를 먹고 또 팬데믹이라는 재난 상황을 겪고 있으니 집이란 진정으로 쉬는 공간임을 느껴요.
Editor | SH Yoon
Photography | SI Woo
Film | JY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