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는 가상 인물 레일라의 하루를 통해 재택근무가 일상이 된 2025년의 일터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레일라는 주 4회 집에서 일한다. 회사에서는 출근 인원을 분산시키기 위해 근무자마다 출근 시간이 조금씩 다르다. 출근하는 날은 주로 회의가 많다. 다른 업무는 굳이 회사에서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원래 회사 사무실은 여러 회사가 입주한 큰 건물 안에 있었다. 지금은 규모를 줄여 작은 건물을 단독으로 사용하고 있다. (중략) 오후 4시, 퇴근할 시간이다. 2020년 봉쇄 이후 레일라는 친구와 함께 도시 외곽으로 이사했다. 출퇴근 길이 길어졌지만 일주일에 한 번 출근이라 개의치 않는다.” 이중 창이 소음을 막아주는 홈 오피스에서 대부분 일하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 외부 사무실로 출근하는 레일라의 삶이 모두의 일상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코로나19 이후 사무실 공간이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최근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집과 분리된 ‘일터 공간’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코로나19 이후 사무실 공간이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최근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안정성, 소속감, 생산성, 편안함, 통제력을 느낄 수 있는 사무실이나 집과 분리된 일터 공간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일터와 휴식 공간의 경계가 느슨해지면서 스트레스가 늘고 육아나 가사 노동 부담이 겹치는 등 부작용도 있는 만큼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확산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원격 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혼합한 ‘하이브리드 근무제’를 도입했고, 원하는 사람은 위워크 같은 공유 사무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로써 도시를 떠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미국 뉴욕을 떠나 교외 지역인 코네티컷으로 이주한 사람이 작년보다 2배 더 증가했다. 뉴욕 맨해튼 집값은 25% 급락했지만 시골 집값은 오히려 올랐고, 장기간 여행지에 머무르며 일을 하는 ‘워케이션’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재택근무를 시행하면 지리적 제약에서 벗어나 더 많은 인재를 채용할 수 있다. 집 안에는 홈 오피스 공간이 필수다. 가족 구성원 모두 집에서 일할 수 있도록 잉여 공간을 이용해 작은 규모의 홈 오피스 공간을 만드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친다. 데스크를 숨길 수 있는 선반, 접이식 책상, 공간을 구분하는 가림막, 바퀴 달린 테이블 등 기능적이면서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는 홈 오피스 전용 가구가 인기다.
하이브리드 근무제 선호, 72%
기업용 메신저 기업 슬랙이 2020년 3월 전 세계 회사원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72% 이상이 하이브리드 근무제를 희망했다. 2020년 6~8월 기준 미국 내 재택근무자는 전체 근로자의 1/3이었다. 그중 83%는 재택근무를 이어가길 원했고, 12%는 사무실로 돌아가고자 했다. 기업용 서비스 회사 PwC가 2020년 6월 실시한 미국 재택근무 관련 조사에서도 경영자 55%는 코로나19가 안정된 후에도 재택근무를 허용할 계획이며 사무직 노동자 83%가 일주일에 1일 이상 재택근무를 원했다.
원격 근무가 유연한 직업으로 전환하고 싶다, 41%
올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재택근무 시행 이후 회사원 41% 이상이 직업을 바꾸고 싶다고 답했다. 이유는 원격 근무가 자유로운 회사로 이동하기를 원해서다. 완전히 다른 커리어를 희망하는 사람도 많다. 선호 업종은 컴퓨터 & IT와 마케팅 & 컨설팅 분야로 디지털 관련 업종 자격증을 따기 위한 온라인 클래스도 늘었다.
원격 근무 채용 공고 증가량, 5배
원격 근무 전환에서 오는 가장 큰 장점은 인재 시장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링크드인 경제팀장 카린 킴브로Karin Kimbrough는 팬데믹 기간 동안 원격 근무 인원 채용 공고가 5배 이상 증가했다고 전했다. 회사 입장에서도 나라, 지역 구분 없이 능력 있는 인재를 채용할 수 있으니 더욱 많은 비용을 원격 근무 시스템 구축에 쓸 수밖에 없다. 이미 미국에서는 원격 근무 허용 여부가 구직자의 직장 선택 기준에서 우선순위가 되었다.
사무실 대신 나만의 일터, 터치다운 스페이스
터치다운 스페이스touchdown space란 정식 사무실이 아닌 간단한 작업 공간을 뜻한다. 기업은 직원들이 출퇴근하기 편한 거리에 위치한 공용 오피스, 호텔 등에 터치다운 스페이스를 마련해놓고 직원들이 편안하게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위워크 타임스퀘어 지점에서 함께 일하던 마이크로소프트 뉴욕 영업팀은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 가까운 지점 어디든 방문해 문서 작업, 전화 업무, 화상회의 등 필요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비효율적 활동, 잡담
웹 모바일 소프트웨어 기업 버퍼Buffer는 재택근무의 부작용으로, 사무실에서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22%), 고립감이나 외로움을 느끼며(19%), 소통과 협업이 어렵다(17%)는 것을 꼽았다. 이에 많은 기업이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데, 협업 도구 개발 플랫폼 기업 깃랩GitLab이 선택한 것은 잡담 효과(chat effect)다. 챗봇이 하루 30분씩 무작위로 대상자를 선정해 집에서 일하는 사원들에게 말을 건다. 사적인 대화가 환기 효과는 물론 아이디어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고.
Editor | AN G
Illust | HK 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