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LABAR
지난 1월 국제 홈데코 박람회 ‘메종&오브제’가 개최됐다. 1994년부터 30여 년 간 1년에 두 번, 홈데코 트렌드를 제시해온 역사 깊은 행사인 만큼, 선정 주제와 작가에 늘 이목이 쏠린다.
올해의 주제는 ‘초현실주의(Sur/Reality)’. 초현실주의는 1920년대 초반에 떠올라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러 형태의 예술 창작물에 꾸준히 영감을 주는 사조이다. ‘상상의 낙원, 꿈으로의 초대, 무의식 속으로의 탐험, 유머, 사치, 특별함, 놀라움, 대담함, 절묘한 시체, 새로운 관점··· 그리고 자유를 위한 공간!’이라는 올해의 캐치프레이즈는 2025 메종&오브제와 초현실주의 사조의 분위기를 잘 대변한다. 한편 ‘라이징 탤런트 어워즈’ 부문에서는 한국의 현대적 공예에 주목했다. 초현실주의와 한국의 현대 공예를 아우르는 홈데코 트렌드에는 어떤 교집합이 있을까?
불안한 현실에서 벗어난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는 무의식이나 꿈, 환상의 세계를 탐구하는 예술 사조를 일컫는다. 메종&오브제가 초현실주의를 올해 주제로 불러들인 것은 사람들이 집에 있는 동안 혼란스럽고 불안한 현실에서 벗어나 꿈같은 세계를 만끽하길 바라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 홈데코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이미지 ©SELETTI, DR, Studio Printemps
초현실주의 사조처럼, 초현실주의 인테리어 역시 현실의 상식을 뛰어넘는 기발함이 특징이다.
기존 형태를 왜곡하거나 과장하는 것은 물론,
익숙한 사물을 전혀 상관없는 것과 연계해 기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초현실주의 디자인의 선구자이자 올해의 디자이너로 뽑힌, 페이 투굿(Faye TooGood)의 작업은 초현실주의 인테리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어린 시절 즐겨 하던 공상에 바탕을 두고 대체로 작업한다. 새소리를 배경으로 길가의 나뭇가지나 끈을 갖고 놀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영향으로, 그녀의 작업에서는 선이나 기하학을 통해 초현실 분위기가 강조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초현실주의 디자인의 선구자, 페이 투굿이 2025 메종&오브제에서 선보인 파빌리온(좌)과 인테리어(우) ©Celia Spenard-Ko
메종&오브제가 주목한 한국 현대 공예
메종&오브제는 ‘라이징 탤런트 어워즈(Rising Talent Awards)’를 통해 떠오르는 작가를 조명하기도 한다. 이 부문은 매년 한 국가를 택해 35세 이하 및 최근 5년 이내 스튜디오를 설립한 신예 디자이너를 선정, 그중 한 명에게 상을 수여한다. 올해는 처음으로 한국을 주목한 해였다. 수상 후보에는 정다혜, 구오듀오, 나이스워크숍, 김민재, 이우재, 이시산, 인영혜가 올랐으며, 최종 수상의 영광은 인영혜에게 돌아갔다.

‘라이징 탤런트 어워즈’ 최종 수상자 인영혜 작가와 그녀가 손바느질로 완성한 작품 ‘face chair’ ©DR
“한반도는 고유의 공예 유산과 서구 문화가 어우러진 비옥한 땅”이라는 메종&오브제의 말처럼, 올해는 최종 수상자를 포함한 수상 후보들의 현대적 공예가 눈에 띄었다. 최종 수상자 인영혜는 손바느질 작업으로 작은 덩어리를 만들고 그 덩어리를 모아 가구 혹은 오브제를 만든다. 작가는 이 덩어리를 ‘얼굴’로 여기며 이를 통해 자신의 ‘내면 세계’를 드러낸다. 이 영향으로 그녀의 작업은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내재하고 있다.

인영혜의 섬유 공예 작품 ©Anne-Emmanuelle Thion, DR
그 밖의 수상 후보에 올랐던 정다혜는 조선시대 공예 기술을 활용해 말 꼬리 털(말총)에 내재된 부드럽지만 강한 ‘힘’을 표현하고, 이시산은 자연석을 결합한 가구를 만들며 기능 너머의 ‘감정적 소통’을 제공한다.

정다혜의 말총 공예 작품과 이시산의 가구 ©Soluna Fine Craft, Anne-Emmanuelle Thion
‘라이징 탤런트 어워즈’ 부스에 전시된 한국의 공예 작업.
1, 2. 정다혜 작가와 그녀의 말총 공예 작품 ©Soluna Fine Art Craft
3, 4. 구오듀오와 폴드 플라스틱 소파 ©DR
5, 6. 나이스워크숍과 볼트 시리즈 ©Anne-Emmanuelle Thion
7, 8. 김민재 작가와 그의 가구 작품 ©JesperLund
9, 10. 이우재 작가와 종이 작품 ©DR
11, 12. 이시산 작가와 원석과 산업용 강판을 활용한 작품 ©DR
메종&오브제는 “일상적인 사물에 경이로움을 불어넣는다면, 그것이 생각과 상상력을 자극해 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2025 메종&오브제에서 소개했듯, 초현실주의 인테리어와 한국의 현대적 공예에서 찾을 수 있다. 만일 혼란스럽고 불안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다면, 꿈같은 낙원으로 나만의 세계를 꾸며보는 건 어떨까.
WRITER | GR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