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과 청계천 일대에 마련된 ‘서울야외도서관’에서 책 읽기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 책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도서관
올 하반기 텍스트힙 문화가 급부상했다. 초기에는 주류에 대한 반작용으로 소수의 젊은 세대만이 상대적으로 희소해진 텍스트를 힙하다고 여기며 즐겼는데, 이제는 독서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나간 추세다. 지난 6월에 개최된 국내 최대 규모 책 축제 ‘2024 서울국제도서전’은 15만 명이라는 역대 최대 인파가 다녀가 화제를 모았고, 작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식은 독서 열풍에 불을 지폈다.
책을 향한 높은 관심은 자극적인 영상 콘텐츠를 피해 아날로그 감성으로 책을 소비하려는 심리,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려는 욕구 등이 작용한 결과다. 이러한 내적동기는 다른 트렌드의 저변에서도 드러난다. 현재 출간된 2025년 트렌드 분석서 중 교집합에 있는 내용들을 큐레이션해봤다.
2025년 트렌드 분석서
일상의 여가화
“답답하게 정체가 계속되며 내일에 대한 기대가 높지 않은 시기에는, ‘현재’의 ‘자잘한’ 움직임이 중요해진다.” 매년 트렌드 분석서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트렌드 코리아>시리즈는 올해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리고 2025년 트렌드 중 하나로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를 꼽는다.
<2025 트렌드 노트-일상의 여가화, 여가의 레벨업>의 부제목에도 일상이 들어간 만큼, 평범한 나날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언뜻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그 개념이 조금은 다르다. 확실한 행복을 위해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보통의 하루를 보낼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하는 삶의 태도다.
그래서 일상 자체가 여가화된다는 예측도 있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며, 장난감을 모으며, 맥주를 마시면서 야구 중계를 보며, 각자의 일상에 몰두”하는 것이다(<트렌드 코리아 2025>). 그러면서 집에서 보내는 일상의 시간 동안 최대한의 만족을 끌어내기 위해, 집을 취향에 맞게 꾸미는 트렌드는 내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또한 뜨개질, 독서 등과 같이 일상에서 간단히 즐길 수 있는 소소한 취미가 떠오르고, 큰마음 먹고 비싼 여행을 가는 대신 1시간짜리 놀이도 코스를 짜서 여행처럼 즐긴다. 점심 산책 코스, 가족과 저녁 데이트, 친구와 주말 성수 나들이, 연인과 상수동 맛집 투어 등 매일의 일상에 여가와 여행성이 들어온다(<2025 트렌드 노트>).
성장의 루틴화
2024년은 과몰입과 도파민에 중독된 사회인 한편 <도파민네이션>이나 <도둑맞은 집중력>의 인기로 보건대 쾌락 과잉 시대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자극적인 것에 시선과 시간을 뺏긴 데에 대한 후회와 피로 누적은 성장 욕구로 이어질 전망이다.
새로운 자기계발 트렌드 ‘원포인트업’은 “지금 당장 눈에 띄는 변화가 없더라도 꾸준히 자신에게 집중하고 작은 성장을 이뤄나가는 과정에 집중해 루틴을 만드는 것”이다(<트렌드 코리아 2025>).
‘나 다움’을 잃지 않는 성장은 개인의 만족도와 성취감이 중요하다. 따라서 오늘날 자기계발 분야는 자격증, 어학 공부 등 과거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청년층에게 각광 중인 러닝, 클라이밍, 독서 등이 대표 예다. <2025 트렌드 노트>의 말처럼 “지금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 지속하며 성장시키고 싶은 나만의 것을 여가에서 찾기 시작했다”.
노화의 저속화
저속노화는 개인을 더 빨리 늙고 병들게 하는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천천히 나이 들 수 있을지에 관한 담론이다. 노화를 가속하는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고 당이 천천히 흡수되는 식단으로 먹기,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충분한 수면 취하기 같은 건강한 생활 습관으로 노화 속도를 늦춘다.
그런데 아직 노년과는 거리가 먼 젊은 세대에까지 저속노화가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Z세대 트렌드 2025>는 Z세대가 선망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오래도록 나 답기를 바라며 20대부터 온전한 미래의 삶을 생각하며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속노화는 Z세대가 추구해온 라이프스타일 ‘갓생(god+生, 모범적이고 부지런한 삶)’과 유사하며 이러한 가치관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라이프 트렌드 2025>에서도 건강이 2030세대에게 새로운 욕망으로 자리잡았음을 짚어내며 러닝 열풍을 필두로 피트니스 시장의 새로운 전성기를 예견하고 있다.
경험의 물성화
오늘날 유행하는 팝업스토어에는 물성매력이 있다. 가상공간을 벗어난 실제의 경험이 사람들에게 매력으로 다가가는 셈이다. “아이들이 더럽든 위험하든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만지려고 하고 입에 넣으려고 하듯, 물성을 느끼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이다. 물성매력은 디지털과 AI로 대표되는 현대사회에서 ‘물리적 실체’를 갈망하는 본질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트렌드 코리아 2025>).
내년에는 오프라인 공간뿐만 아니라,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경험과 아이템이 더욱 중요해지리라 예상되고 있다. 한 예가 아날로그 물성을 가진 종이책이다.
“Z세대에게는 종이책은 그동안 누려보지 못한 새로운 도구다. 다들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시대이다보니 종이책을 든 것이 희소하고, 차별화되는 멋진 포인트라 여겨질 수 있다. 취향과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금 시대에 Z세대가 책을 선택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다”(<라이프 트렌드 2025>).
종이책은 아날로그 물성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매거진 C>는 전 세계 유일한 의자 전문 잡지로 한국에서 출간됐는데, 이는 하이엔드 의자에 대한 국내의 높은 관심도를 대변한다.
물성매력을 가진 또 다른 아이템은 의자다. 그 중에서도 하이엔드 의자. “2030세대는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을 어떻게 꾸미고, 누릴까에 대한 보편적 관심이 생긴 상태이고, 올드 머니를 비롯한 전통적 부자의 럭셔리 라이프에 대해서도 눈떠가는 중이다.”(<라이프 트렌드 2025>). 이처럼 의자는 럭셔리 라이프를 경험해볼 수 있는 입문 아이템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가 우리의 의식주 및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어떤 변화로 이어질지 기대가 된다.
WRITER | GR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