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희망 사항은 돈의 사용처에서 드러난다. 식물을 산다는 건 자연과 함께 살고자 하는
의지이고, 방 한편에 둘 책상과 조명을 산다는 건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꿈꾼다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홈 퍼니싱 소비 트렌드는 현대인이 꿈꾸는 일상의 미래를 반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1년 현재, 우리는 어떻게 살고 싶어서 집에 무엇을 들이고 있을까?
지난 5월 국내 3대 백화점의 2021년 1분기 매출 실적이 공개됐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세 곳 모두 전년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이 상승 곡선을 그렸다. 특히 롯데백화점의 경우 매출 11.5%, 영업이익은 261.3% 증가했고 그중 생활가전 매출이 뚜렷하게 증가했다. 일견 코로나19 확산과 거리 두기 연장으로 ‘집콕’ 시간이 길어졌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지만, 사실 집 꾸미기 열풍은 이미 한참 전부터 불고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집방’, ‘북유럽 스타일 인테리어’ 같은 키워드가 2015년부터 존재하지 않았나. 집이 곧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무대라는 인식이 통용된 지 오래이니, 우리에게는 ‘집 꾸미기가 유행’이라는 현상보다는 그 속내를 들여다볼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그래서 요즘 리빙 시장의 화두는 무엇인가? 그게 왜 각광받는 걸까?
오재철 롯데백화점 본점 생활가전팀 팀장은 “전통적인 가전 목록에서 벗어난 기기들이 생활 필수품으로 추가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로봇 청소기, 의류 관리기, 식기세척기, 공기청정기 등이 옵션이 아닌 ‘필수템’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현상에서 현대인의 니즈와 취향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집을 설계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정보다. 공간을 레이아웃할 때 신경 써야 할 치수가 생겼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생활을 더 편리하게,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고자 하는 사람은 집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산정하고 기꺼이 자신의 삶에 맞게 최적화하려는 현상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1~2년 사이에 가전・가구를 구매한 사람이 많이 늘었나요?
아시다시피 홈 퍼니싱 시장은 줄곧 성장세였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홈 퍼니싱 시장의 국내 매출액이 13조 7000억 원이었고 2023년까지 18조 원을 기록할 것이라 전망했습니다. 그래도 코로나19가 인테리어 열풍에 불을 지핀 건 분명합니다. 유명 맛집과 관광지를 찾아다닐 시간에 ‘집콕’을 하다 보니까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우리 집 냉장고를 언제 샀더라?’ ‘소파가 이렇게 내려앉아 있었나?’ 그러던 중 TV에서 하이엔드 가구로 멋지게 꾸민 스타들의 집을 보고, 인스타그램 등 소셜 계정에서 감성 넘치는 친구들의 집을 구경하게 되니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뭐부터 바꿀까?’라는 생각으로 쉽게 옮겨가는 것 같습니다. 저희 롯데백화점뿐만 아니라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도 리빙 매장을 확장하는 추세라는 것이 그 트렌드의 확실한 증거지요.
요즘 사람들은 어떤 물건을 많이 구매하나요?
폭을 조금 좁혀서 저희 롯데백화점 가전 상품군 소비자층의 60%를 차지하는 신혼 가구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전통적인 혼수 가전이라고 하는 냉장고, TV, 세탁기 이런 제품에 더해 내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 나아가 일상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기기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예컨대 2018~2019년에는 건조기, 스타일러라고 하는 의류 관리기가 히트였습니다. 그때는 미세먼지에 대한 이슈가 두드러진 시기이기도 했죠. 그리고 2020~2021년에는 식기세척기를 꼽을 수 있습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또 만남을 갖더라도 집에서 만나는 경우가 늘었으니까요. 공기청정기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최근 3년 동안 구매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이제는 살까 말까를 고민하는 것보다는 ‘몇 대를 살까, 방마다 놔야 하나’를 고민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사람들이 가전・가구를 산다는 건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만족과 여유 시간을 원한다는 사실을요.”
이러한 소비 트렌드를 어떤 심리로 봐야 하나요?
기기에 투자하고 그로써 확보된 시간을 다른 데 쓰기를 바라는 마음이죠. 예컨대 청소는 로봇 청소기에 맡기고 그 시간에 나는 ‘영화를 보겠어’, ‘요리를 하겠어’ 이런 니즈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비단 MZ세대만의 특성이 아니며 40~50대 층으로도 번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집 설계자는 이런 걸 봐야 할 것 같아요. 드릴을 사려는 사람은 드릴 그 자체가 필요한 게 아니라 구멍을 원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사람들이 가전・가구를 산다는 건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만족과 여유 시간을 원한다는 사실을요. 그러니 사람들이 집에서 그렇게 얻은 만족감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를 관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방배그랑자이 입주 시기에 홈 스타일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들었습니다.
GS건설에서 흥미로운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저희로서도 신선한 프로젝트였습니다. “GS건설이 기획 중인 홈스타일링 입주서비스에 함께 참여하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보통 입주 박람회라고 하면 입주민에게 리플릿을 나눠주고 작은 키오스크에서 상담해주는 정도가 다였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스타일링을 한 진짜 집을 놓고 이야기를 하면 보는 사람은 훨씬 빠르고 효과적으로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있고, 설명하는 사람은 제안을 할 때 설득력이 높아집니다. 저희 미션은 두 가지 평형 타입을 각각의 콘셉트로 가전, 가구는 물론 벽에 거는 그림까지 모두 스타일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홈 스타일링 컨설턴트가 입주민과 일대일로 상담하며 스타일링 팁을 알려드렸습니다. 결과적으로 다음 프로젝트를 기약할 정도로 호평 속에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입주민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가전・가구는 그 자리에서 입어보고 살 수 있는 의류와는 다른 소비재입니다. 금액대도 높고 부피도 크기 때문에 쉽사리 선택할 수 없지요. 또 대다수의 가전・가구 소비자는 우리 집과 잘 어울리는지, 내가 잘 쓸 수 있는지를 최대한 따져보고 구매하려고 하므로 단번에 결정하기보다는 2~3번 정도 매장에 와서 실물을 보고 전문가와 상담해본 뒤 구매하려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실제로 내가 살 집에 해당 모델을 설치해놓고 보는 것의 효과가 컸습니다. 왜냐면 백화점에 디스플레이된 모습과 집에서 보는 모습은 다르거든요. 그리고 전문가의 조언 등을 한자리에서 얻을 수 있어서 만족도가 높았던 것 같습니다.
집을 스타일링한다는 관점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네요.
요즘 소비자들은 옛날처럼 우수한 성능만으로 구매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우리 집, 나의 감성에 잘 어울리는 디자인이 중요합니다. 처음 입주하였을 때 같은 집이더라도 홈스타일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집주인의 개성이 드러나게 되죠. 집이라는 공간은 집 주인의 개성과 취향을 반영하는 매개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홈 스타일링’은 이 시대에 놓쳐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메종아카이브라는 편집숍을 기획한 건가요?
롯데백화점 본점이 기획한 메종아카이브는 올해 3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온・오프라인에서 주목받는 주방・식기, 패브릭, 홈데코・조명 등 요즘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브랜드를 모두 모았습니다. 이미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이라 아는 분은 눈여겨봤다가 구매하시고, 모르는 분은 새롭게 아는 재미가 있다고 좋아하십니다. 편집숍이라는 말처럼 고객들이 여러 제품을 한눈에 보고, 쉽게 상상하고 자신의 집을 위한 아이템을 발견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Editor | SH Yoon
Photography | SI Woo
Film | JY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