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자본의 논리 안에서 매매 수단으로 전락했던 집이 예전의 가치를 되찾고 있다는 사실을 두 팔 벌려 환영하게 된다. 이제 집은 입주자의 아이덴티티와 취향을 반영하는 공간이며 동시에 소통을 위한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테라스가 자리하고 있다.
테라스 3
흔히 집을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공간 정도로 인식하지만 사실 예전에는 이보다 더 많은 역할을 했다. 가내수공업이 일반화되어 있던 18~19세기에 집은 곧 일터를 뜻하기도 했다. 앞뜰과 뒷마당은 지인을 초대하고 교류하는 소셜 플랫폼이었으며 고요한 사색을 즐기는 공간이기도 했다.
집과 분리된 본래의 기능
산업화 및 도시화가 본격화되면서 집 기능의 일부가 집 밖 공간에 이양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자리를 옮긴 것은 노동 공간의 기능이었다. 소품종 대량생산이 발달하고 테일러리즘이 보편화되면서 공장과 오피스 등 별도의 업무 공간이 발달했다. 도시의 급격한 성장은 이 밖에도 집의 기능을 모두 ‘외주’로 돌리는 데 일조했다. 산업과 인프라가 도시에 집중되면서 많은 이들이 도시로 몰려들었고, 도시는 과밀한 인구 밀도를 수용하기 위해 집의 면적을 줄여야만 했다.
협소한 집은 이전처럼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웠고 레스토랑, 카페테리아, 클럽하우스, 그 외 다양한 문화 시설이 하나씩 그 기능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기조가 한 세기 가까이 이어지며 ‘집에 머문다’는 것은 곧 ‘사회생활을 차단하고 고립된다’는 의미로 변질되기에 이르렀다.
집을 벗어나지 않아도 충분히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디지털 환경이 만든 집으로의 귀환
하지만 디지털 혁명이 촉발되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집을 떠났던 노동과 생산 공간의 기능이 돌아왔다.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지식 산업이 대세로 떠오르며 노동 집약적 공간은 차츰 힘을 잃었다. 디지털 노매드라는 새로운 종족이 변화를 이끌었다. 이들 중 일부는 자유로운 이합집산이 가능한 공유 오피스를 일터로 삼기도 하지만, 그보다 앞선 것이 집이었다. 홈 오피스가 21세기에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고, 팬데믹 상황까지 겹치면서 재택근무가 빠르게 일상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홈 엔터테인먼트가 뒤를 이었다. OTT 산업은 이를 자극한 촉매제 중 하나인데, 넷플릭스로 대변되는 이 ‘창조적 파괴’는 집을 벗어나지 않아도 충분히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집이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 변모한 데에는 좀 더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했다. 기술의 발달로 이른바 언택트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불필요한’ 접촉을 피하고 필요한 서비스만 취하는 비대면 기술이 발달하자 사람들은 오히려 연결되고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간 급부상한 소셜 살롱 비즈니스는 느슨한 연대와 수평적인 소통을 내세워 밀레니얼 세대에게 큰 관심을 모았다. 비록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소셜 살롱의 오프라인 공간은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직격탄을 맞았지만, 이들이 흔들어 일깨운 커뮤니티의 가치는 고스란히 집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배달 시장이 빠르게 외식 산업을 대체하고 홈 다이닝, 홈 파티 등이 보편화되면서 집은 사교의 장으로서의 기능마저 되찾았다. ‘남의집 프로젝트’ 같은 스타트업이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치 않다.
테라스의 환대와 자발적 고립
그런데 여기서 주거는 필연적으로 한 가지 난제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과연 되찾은 본연의 기능을 수행할 공간이 집 안에 있느냐 하는 것이다. 테라스가 이 대목에서 다시금 빛을 발했다. 테라스야말로 이런 다양한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는 집에서 ‘중간 공간’이라는 독특한 위치에 있는 테라스의 특징과 무관치 않다. 즉 절반은 사적인 공간이고 절반은 외부로 열려 있는 공간이기에 나와 가족은 물론 적정선의 사회적 관계까지 끌어안을 수 있다.
자이의 기준층형 테라스 ‘로지아’는 크게 다이닝 룸과 연계한 백 야드 로지아Back Yard Loggia와 마스터룸과 이어진 프론트 야드 로지아Front Yard Loggia로 이뤄져 있는데, 이 중 전자는 구조와 동선상 사교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 가벼운 운동을 함께 즐기는 가족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친구나 지인을 초대해 홈 파티를 열 수도 있다. 또 가까운 이웃과 한담을 나눌 수 있는 플랫폼으로도 손색이 없다. 대형 식탁을 놓을 수 있는 와이드 다이닝 공간인 만큼 먹고 마시며 다양한 네트워킹을 즐길 수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테라스가 역설적이게도 만남의 공간뿐 아니라 ‘자발적 고립의 공간’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인은 온·오프라인상에서 수많은 관계에 둘러싸여 있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 이처럼 피로감이 가중되자 사람들은 차츰 외부와 관계를 끊고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최근 요가 클래스나 명상 등이 조망받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사람들은 차츰 외부와 관계를 끊고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테라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요람
테라스는 이처럼 홀로 고요한 시간을 갖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자이의 프론트 야드 로지아는 마스터룸과 바로 연결되어 있어 다른 사람들과 마주하지 않고도 테라스에 진입할 수 있다. 이곳에서 명상이나 독서를 하며 한적한 시간을 보내거나 가드닝을 즐길 수 있다. 결국 테라스는 느슨하게 열린 공간으로도, 반대로 오롯이 나만을 위한 은신처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이 흥미로운 두 가지 가능성을 저울질하며 테라스는 주거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일찍이 <공간의 시학>에서 집은 ‘우리의 최초의 세계’이며 ‘하나의 우주’라고 역설한 바 있다. 한때 자본의 논리 안에서 매매 수단으로 전락했던 집이 예전의 가치를 되찾고 있다는 사실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이유다. 이제 집은 입주자의 아이덴티티와 취향을 반영하는 공간이며 동시에 소통을 위한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테라스가 자리하고 있다. 자이안들의 ‘새로운 우주’는 오늘도 테라스를 자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Editor | MH Choi
Photography | Morley von Sternberg
Illust | HK 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