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외부공간의 변천사에는 시대의 요구가 녹아 있다. 자동차가 대중화되던 1980~1990년대에 너른 주차 공간을 계획해 편리함을 강조한 것, 웰빙에 관심을 키우던 2000년대에 다양한 조경요소와 쉴 수 있는 부대시설을 계획해 쾌적함을 더한 것이 그 예다. 현재는 건강한 휴식을 위한 장소로서 힐링과 친환경을 콘셉트로 앞세운 조경공간의 프리미엄화가 눈에 띈다. 예로 자이는 정원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생태조경시스템이나 기후변화 대응 솔루션 등을 연구 및 적용하며 차별화된 조경공간을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가 촉발한 사회적 변화와 뉴 노멀의 등장은 이러한 외부공간에 또다른 역할을 요청하고 있다.
우리엔디자인펌은 1997년 개소 이후로 아파트 조경 설계를 꾸준하게 수행하며 시대의 변화를 겪고 대안을 제시해 온 조경설계사무소다. 강연주 우리엔디자인펌 대표는 “앞으로 더욱 개개인의 요구에 세심하게 응답할 수 있는 조경 디자인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하며 힐링 그 이상의 새로운 제안과 즐길 거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입주민이 조경공간을 어떤 방식으로 느끼는지 더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며 조경을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가 말을 건네듯이 상상을 일으키고 행동을 이끌어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나무 몇 그루 있는 정도에 만족했던 20년 전과 달리 지금은
조경 공간을 삶을 느끼는 장소로 생각해요.”
아파트 조경 설계와 관련해 20년 전과 요즘의 화두가 달라졌음을 느끼시나요?
배치, 건축, 재료, 설비 등 어느 부문에서 변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조경 부문은 정말 크게 바뀌었어요.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불러온 큰 전환이죠. 나무 몇 그루 있는 정도에 만족했던 20년 전과 달리 지금은 조경 공간을 삶을 느끼는 장소로 생각해요. 그로 인해 지상 주차장 면적이 줄고 조경 면적이 크게 늘었어요. 자연에서 건강한 자극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에 건설사 입장에서는 양질의 시간을 제공하고자 체험 프로그램이나 문화 콘텐츠 개발 등 다방면으로 신경을 쓰는 모습이에요.
여러 브랜드와 협업하고 계시지만 그중 자이가 선보이는 조경 디자인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집에 대한 가장 앞선 생각’이란 슬로건처럼 자이는 새로운 도전에 기꺼이 나서는 것 같아요. 조경 협업사를 선정할 때도 최저가 입찰 방식을 택하기보다는 디자인 공모전 형식을 통해 색다른 아이디어와 신선한 디자인을 받아들이려고 해요. 공간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운영적으로도 투자를 많이 하는 모습이죠. 조경 디자인의 특징이라면 섬세함을 꼽을 수 있겠어요. 조경의 레이아웃과 스토리텔링을 중요하게 생각해 촘촘하고 아기자기하게 콘텐츠를 기획해요. 죽은 공간이 없도록 여러 각도에서 활용도를 고민하고 구현해요. 덕분에 저희도 다양한 피드백을 얻고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어서 기쁘게 작업하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자이와 일한 지도 10년이 넘었네요. (웃음)
김포 한강센트럴자이 조경 / 사진: 강연주 제공
말씀을 듣고 보니 김포 한강센트럴자이가 떠오릅니다. 우리엔디자인펌이 디자인을 총괄해 마을길과 숲길을 테마로 한 조경공간을 선보였죠. 이렇듯 스토리텔링을 중요하게 기획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하는 일의 핵심은 삶에 자연이 더욱 잘 녹아 들 수 있도록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조경은 일상이란 레이어를 다채롭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가령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돋고 꽃이 피는 걸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고, 조금 더 깊이 관계를 맺다 보면 감성적인 자극까지도 얻을 수 있죠. 그렇기에 자주 보고 싶고 걷고 싶은 조경공간을 만들기 위해 이야기가 있는 조경 디자인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겉치레 하려는 조경이 아니라 향유하는 공간으로서의 바탕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김포 한강센트럴자이에서 길을 테마로 각기 다른 장면을 설계했어요. 또 예술적 가치를 더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조경가 세 명이 각자의 감각으로 서로 다른 정원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저도 참여했는데 비화원이라고 이름을 붙여 소개했어요.
평택 센트럴자이 자이팜 / 사진: 강연주 제공
어떠한 ‘경험’을 제공할지가 관건이네요.
요즘처럼 개인의 여가 시간이 늘어난 때에는 바깥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잖아요. 그 니즈를 발견하고 구현하는 것이 오늘날 아파트 조경의 숙제 같아요. 저희는 2019년 준공한 평택 센트럴자이 3차에서 자이팜(텃밭)과 자이홈캠핌장을 만들어 여가프로그램을 도입한 적이 있어요. 준공 후 계절마다 모니터링을 나갔는데 자체적으로 규칙을 만들어 잘 사용하고 계시더라고요. 입주민 만족도가 좋아요. 지금 진행 중인 강릉자이 파인베뉴 조경에서는 상가 앞에 커뮤니티 광장을, 단지 중심에는 마치 리조트에서 볼 법한 조경디자인을 기획하고 있어요. 강릉에 처음 생기는 자이이기에 차별화된 공간을 선보이고자 힘을 싣고 있어요.
“앞으로 아파트 조경공간은 일상에 긍정적인 피드백을
남길 수 있는 활동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해요.”
대표님의 눈에 비친 오늘날의 숙제는 무엇인가요?
1~2인 가구의 증가, 노년층의 증가, 사회적 거리두기 등과 같은 사회적 변화와 집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문화적 변화가 공존하고 있다고 느껴요. 그러다 보니 많은 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을 더이상 낯설어 하지 않고, 더 유익하게 보낼 방법을 궁리하죠. 그렇다면 앞으로 아파트 조경공간은 일상에 긍정적인 피드백을 남길 수 있는 활동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해요. 보여 주기식으로 과도한 장식만 더해서는 설득력을 갖기 힘들어요. 그래서 저는 세밀하게 디자인하는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자연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공간, 소규모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 혼자서 멍 때릴 수 있는 공간 등 장면을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그에 적합한 시설을 구현하는 식으로요. 예로 저녁 시간에 단지 둘레를 조깅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이때 코스를 어떤 식으로 다양화할 수 있을지, 재미를 만들어 줄 포인트는 없을지, 안전하고도 편안하게 느끼는 조도는 어느 정도인지 고민하는 것이죠. 조경은 복합적인 피드백이 오가는 분야이기에 입주민의 의견에 특히 더 귀를 쫑긋 세워야 하고요.
복합적인 피드백이란 무슨 뜻인가요?
조경 디자인이란 게 단순히 ‘보기에 좋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거든요. 물론 예술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자연과학적으로도 또 문화적으로도 접근해야 하는 분야예요. 그래서 저는 조경 디자인에 ‘트렌드’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트렌드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거든요. 물론 시대를 선도하고 화제를 생산하기 위해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란 걸 알지만 그럼에도 조경의 본질을 고민하고 사람을 이해해 그곳만의 조경 철학을 만드는 것이 더 유효한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믿어요.
대표님은 어디에서 주로 힌트를 얻으시나요?
자연을 본다는 것이 사실 굉장히 직관적인 일이잖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연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요. 그렇다면 조경가는 어떻게 흥미를 다시 끌어 올 수 있을지를 파고 들어야 해요. 어떤 요소와 결합하면 새로운 시너지를 얻을 수 있을지, 복합적으로 느끼는 게 무엇일지 고민하는 거죠. 아파트 조경의 경우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 살고, 각각 다른 시간대에 조경공간을 즐기는 특징이 있으므로 어느 시간대에 어떤 사람들이 어디를 어떻게 쓰는지 관찰하는 것이 중요한 힌트가 되어요. 결국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청년들,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자주 나누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또 기본적인 삶의 가치에 대해 공부를 하려고 해요.
아파트 조경 설계를 약 20년간 하셨어요. 이 일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처음 발을 디뎠던 시기만 하더라도 아파트를 저평가하던 때에요. 공급자 위주의 개발 방식과 재산 가치로만 보는 시각이 팽배했어요. 그럼에도 저는 아파트가 개인의 일상과 굉장히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게다가 다수의 삶과 연결되어 있고, 또 우리 사회에서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존재라고 여겼어요. 그래서 아파트를 공기와 같은 문화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해 매력을 느꼈어요. 여전히 조경학계에서는 아파트 조경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하는 편은 아니에요. 오히려 과장된 문화라고 쓴소리를 하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파트 조경이 조경 부문 발전에 기여한 부분이 분명히 있고, 또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를 원하는 계기에 조경이 큰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어요. 앞으로 그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Editor | SH Yoon
Photography | JM Kim
Film | JY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