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가 보편화되고 스마트폰만 있으면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자신의 창작물로 돈을 버는 ‘크리에이터’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들이 만드는 경제 구조 즉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도 가파른 성장세를 그리는 중이다.
개인이 자신의 창작물을 기반으로 온라인 플랫폼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생태계의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그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틱톡 등 광고 수익을 기반으로 플랫폼과 창작자가 수익을 나누는 거대 플랫폼뿐 아니라 구독자들에게 직접 후원을 받는 다양한 중소 플랫폼들이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다변화를 이끌고 있다. 보다 쉬운 창작을 돕는 챗GPT 등 생성형 AI 역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진화를 가속화할 전망이다.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키워드와 데이터를 통해 들여다보았다.
#3억 300만 명
전 세계 크리에이터 수
미국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어도비(Adobe)가 2022년 8월 발간한 <크리에이티브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자신을 ‘크리에이터’로 정의하는 사람들의 수는 무려 3억 300만 명에 달하며, 이 중 절반이 넘는 1억 6,500만 명이 지난 2년 사이 새롭게 크리에이터가 되었다고 한다. 이번 보고서는 한국을 비롯한 미국, 영국, 스페인, 프랑스, 독일, 호주, 일본, 브라질 등 9개 국가의 크리에이터를 대상으로 조사한 것으로, 전체 크리에이터 중에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1995년생)가 42%, Z세대(1996년~2005년생)가 16%를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에서도 팬데믹 이후 크리에이터 인구가 크게 늘었다. 한국전파진흥협회의 ‘2021년 1인 미디어 산업 실태 조사’에 따르면, 1인 미디어 콘텐츠 창작자 소득 신고 인원은 2019년 4,875명에서 2020년 3만 3,065명으로 1년 만에 7배 가까이 증가했고, 이들이 벌어들인 연간 총소득은 4,521억 원에 달한다.
#4,800억 달러(한화 약 606조 원)
5년 후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시장 예상 규모
2021년 하반기부터 서유럽을 중심으로 불어닥친 대사직 열풍(The Great Resignation: 직장인들의 대규모 자발적 퇴사) 역시 많은 사람이 크리에이터 시장에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2021년 11월 직장인 1만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약 10%가 향후 6개월 안에 본업을 그만두고 크리에이터로 전업하는 걸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 또 응답자 중 36%는 이미 ‘유튜브나 틱톡 같은 콘텐츠 제작 플랫폼이나 전자상거래로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 다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022년 현재 2,500억 달러(한화 약 31조 원) 규모인 크리에이터 이코노미가 5년 후엔 4,800억 달러(한화 약 606조 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대형 플랫폼에서 중소 플랫폼으로,
광고에서 직접 후원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크리에이터의 숫자만큼이나 이들이 창작물을 올리는 플랫폼 역시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성장에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틱톡 등 광고를 기반으로 창작자와 수익을 나누는 대형 플랫폼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최근엔 오히려 대형 플랫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소 플랫폼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콘텐츠 조회 기반의 광고 수익 발생 등 수익 창출 한계에서 벗어나 온라인·모바일 플랫폼에서 보유한 팔로워 기반으로 직접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
새로운 크리에이터 플랫폼의 대표주자인 미국의 패트리온(Patreon)은 멤버십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용자들은 창작자가 만들어낸 영상과 팟캐스트, 글 등을 패트리온에서 찾을 수 있고, 그들에게 일정한 금액을 직접 후원할 수 있다. 현재 패트리온의 월 사용자 수는 300만 명이 넘으며, 지금까지 1억 달러(한화 약 1,270억 원)이 넘는 투자금을 유치했다. 유튜브에선 콘텐츠 창작자가 평균적으로 광고 수익의 55%를 가져가는데, 패트리온에서는 크리에이터가 구독 수익의 88~95%를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는 ‘포스타입(postype)’이 구독자에게 유료 포스트를 판매하는 등 패트리온과 비슷한 형태의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플랫폼의 역할을 하고 있는 가운데, 네이버와 카카오 등 대형 인터넷 포털 서비스들을 중심으로 콘텐츠 유료 구독 서비스가 확산되고 있다. 네이버는 뉴스 콘텐츠를 유료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 ‘프리미엄 콘텐츠’를 론칭, 유료 콘텐츠 실험에 나섰고, 추후 동영상과 오디오 콘텐츠로 그 범위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카카오 역시 이용자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유, 무료 서비스를 선택해 구독할 수 있는 ‘카카오 뷰’ 서비스를 내놓았다.
#130만 원 이하
크리에이터 절반의 1년 수입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가 연간 수십 억 원의 수입을 올린다는 기사가 화제가 된 것도 벌써 여러 해가 되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크리에이터들은 생활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무료 소셜 미디어 참조 랜딩 페이지를 만드는 링크트리(Linktree)의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업 크리에이터 중 46%가 연간 1,000달러(한화 약 127만 원) 미만을 번 것으로 나타났다. 광고 수익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려면 100만 명의 활성 구독자가 필요한데, 그렇게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크리에이터는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앞서 소개한 패트리온이 플랫폼 수수료를 5%로 낮게 책정한 것 역시 자신이 무명 뮤지션이던 시절, 유튜브에서 겪은 좌절 때문이었다고 한다.
#생성형 AI가 이끄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대중화
인간의 생산성과 창의성을 돕는 생성형 AI로 인해 가장 큰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산업이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다. 대부분의 생성형 AI는 챗GPT와 같은 대화형 인터페이스를 통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 창작 분야에서 생성형 AI는 기획부터 제작, 편집 등 전 과정에서 인간을 보조할 수 있다. 그림 솜씨가 없어도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악보를 볼 줄 몰라도 작곡을 할 수 있다. 누구나 만들고 싶은 콘텐츠의 주제를 문장으로 입력하기만 하면 생성형 AI가 근사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8년 ‘미래의 직업 프리랜서’ 보고서에 따르면 크리에이터들이 영상을 제작해 올리는 데 평균적으로 36시간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생성형 AI의 발전과 함께 이런 시간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그 대부분의 결과물이 크리에이터의 고민과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담은 것이 아닌, 그저 기성 아티스트들의 스타일을 베낀 것에 불과하다는 것. 저작권과 관련된 문제 제기도 심심찮게 이어지고 있다. 궁극적으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진정한 발전에 생성형 AI가 기여하기 위해서는 콘텐츠 장르별로 크리에이터들이 실제 작업하는 환경에 맞춰 최적화된 AI를 개발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생성형 AI를 고도화하는 과정에서도 각 분야 크리에이터들의 전문적인 경험이 필수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시장의 전망과 성장 가능성은 매우 밝지만 크리에이터로 살아남기는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기업에 비해 트렌드에 민감하고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크리에이터들이 소비자의 취향과 유행이 점차 빠르게 변화하며 파편화되는 최근의 흐름과 잘 맞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TV 스타보다 크리에이터들과 더 많이 교감하는 시대. 이제 소비자들은 크리에이터들에게 직접 비용을 지불하고, 자신이 후원하는 크리에이터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계속 전달해 주길 원하고 있다.
WRITER | KY CHUNG
ILLUSTRATOR | MALLANGL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