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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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의 로컬리즘

떠오르는 로컬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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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리즘은 최근 한국의 주요한 라이프 트렌드 중 하나다.
수많은 이들이 지역의 낡고 투박한 공간을 개조한 매장에서 찍어 SNS에 올린 사진의 양만 봐도 수긍이 간다.
로컬리즘이라는 트렌드를 사회적, 공간적, 건축적 맥락으로 조금 더 깊게 살펴봤다.

로컬이 트렌드다

최근의 주요 라이프 트렌드 중 하나로 ‘로컬리즘’을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골목길 경제학자’ 연세대학교 모종린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신동아> 2023년 2월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반적으로 지역색과 개성이 강한 상권이나 지역을 로컬로 부르지만 한국에서 로컬은 상권 중심으로 형성되고 확장된다. 한국에서 로컬을 독립된 문화를 창출하는 크리에이터 상권으로 정의할 수 있는 이유다. 로컬이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상권으로 머물지 않고 소상공인 성장 동력, 지역 기업 생태계,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플랫폼 등 세 방향으로 확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은 동네가 로컬일 수도 있고, 도시 전체가 로컬일 수도 있다.”

그는 로컬리즘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2010년 이후 등장한 ‘로컬 지향’ 현상은 귀농 귀촌, 제주 이민, 동네 지향, 장소 지향, 고향 지향 다섯 가지를 꼽을 수 있다. 그중 동네 지향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슬세권’(슬리퍼 신고 활동할 수 있는 지역), ‘스세권’(스타벅스 매장이 있는 지역), 홈 어라운드 소비(집 주변에서 소비) 같은 신조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네 중심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공간과 건축으로 드러나는 로컬리즘

모종린 교수의 말처럼 요즘 사람들은 지역에 집중하고 이것을 ‘나다움’이라고 여긴다. ‘나다움’을 보여주는 로컬리즘은 결국 공간과 건축으로 드러난다. 이런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는 2022년 12월 개점한 ‘스타벅스 경동 1960점’이다. 이 매장은 경동시장 안에 위치한 옛날 극장을 개조한 것이다. ‘안 쓰는 공간 개조’, ‘서울의 오래된 지역’, ‘스타벅스’ 등의 키워드가 사람들을 홀린다. 역시 열리자마자 인기다.

이처럼 지역에 위치한 오래된 건물을 카페로 개조하는 사례는 이미 많다. 카페 ‘프릳츠’ 본점은 갈빗집을 개조했다. 부산의 ‘모모스’ 커피 본점은 보신탕집을 개조했다. 부산역 근처 병원 건물을 개조한 ‘브라운핸즈’도 유명하다.

로컬 공간에 카페가 많고, 오래된 건물이 유독 카페로 많이 리모델링되는 이유는 현실적으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적절한 예산에 맞춰 옛날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옛 건물이 가진 로컬의 정취를 살렸다’라고 강조하는 게 요즘 한국형 공간 브랜딩이다. 스타벅스 경동 1960점도 한국형 로컬 카페 공간 경향의 큰 흐름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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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경동 1960점

로컬 공간이라 부르려면 해당 지역의 특색이 있어야 할 것이다. 상업 공간에서 그 공간의 특색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지역이 한국에 하나 있다. 부산이다. 그 점에서 부산의 자신감과 자기표현에는 눈여겨볼 구석이 있다. 앞서 언급한 브라운핸즈와 모모스도 부산 브랜드다.

‘모모스 영도’에서는 부산 특유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모모스는 한국인 최초로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전주연 바리스타가 소속된 곳이기도 하다. 세계 챔피언을 만들기 위한 지원, 자신들의 고향 부산에 대한 꾸준한 관심 등에 힘입어 이들은 부산발 전국구 커피 브랜드가 되었다. 모모스는 확장을 위해 영도를 골랐다. 영도는 부산의 저소득층 지역이었으나 한국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베이사이드(항구 근처)의 느낌으로 멋쟁이 가게들이 많이 생기는 곳이다. ‘이 분위기가 부산이다. 우리는 부산 로컬이라 이곳을 택했다’라고 한다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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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스 영도 로스터리&커피바 (제공. 모모스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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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스 영도 로스터리&커피바 (제공. 모모스커피)

모모스 영도에는 기능적 맥락도 있다. 이곳은 커피 공장과 카페를 함께 운영하니 생두 수입, 가공, 유통, 판매에 이르는 연결망을 갖출 필요가 있다. 그렇게 보면 영도에 커피 공장 겸 카페를 차린 건 현명한 선택이다. 영도는 부산 시민 입장에서는 중심지와 멀 수 있으나 부산을 찾은 외지인에게는 그다지 멀지 않기 때문이다. 로컬 공간의 명분과 기업 운영이라는 실리를 다 갖췄다.

‘어니언 광장시장’ 역시 광장시장 안의 오래된 공간을 카페 인테리어 요소로 활용한 경우다. 기존의 어니언 카페들 역시 ‘오래된 공간을 카페 인테리어 요소로 활용한다’는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어니언이 유명해진 성수점과 현대그룹 계동 사옥 옆 한옥을 개조한 어니언 안국점이 그랬다. 어니언 미아점도 마찬가지다. 서울 강북우체국으로 쓰던 미아동 건물의 내부를 헐고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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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언 성수점

지역 특성을 창의적으로 해석하는 로컬 건축

해외에도 로컬의 특색을 살린 공간들이 많다. 그중 일류 건축가들이 만든 공간은 지역 특성을 해석하는 깊이가 다르다. 그들에게 로컬은 창의력과 직결되는 요소다. 대도시가 아닌 지역이면 같은 건축 자재라도 운송비가 더 든다. 건물을 짓는 국가가 바뀌면 해당국 인부의 숙련도에 따라 건축물의 디테일도 달라진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은 이렇게 불리한 변수들을 창의성의 원천으로 삼는다. 해당 지역에서만 나는 재료를 사용해 저렴한 비용으로 멋진 건물을 짓는 일이 좋은 예다.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 역시 이런 이유로 세계적 유명세를 얻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물은 스위스 그라우뷘덴 주의 산 중턱에 있는 교회당과 발스의 온천장이다. 그는 교회당 외벽을 그 동네의 나무껍질로 만들었다. 기후에 강하고 보기에 아름다우며 동네 어디에나 있는 나무껍질이니 수리도 쉽다. 온천장의 주재료도 그 동네에서 많이 나는 돌이다. 그는 돌을 다양한 두께로 잘라 돌의 패턴만으로 건물의 흐름과 동선의 리듬을 만들어냈다.

페터 춤토르가 지역의 특성을 살려 지은 교회와 온천장. 이 건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일본 토치기 현에 있는 건축가 쿠마 켄고의 돌 박물관도 비슷한 경우다. 겉보기에는 그냥 돌을 쌓아 올린 건물인데, 이야기를 알고 나면 이거야말로 로컬 건축이다. 건축주는 예산이 적었지만 동네 특산물인 돌은 아주 많았고, 무엇보다 전문 석공 인력을 쓸 수 있었다. 쿠마는 이렇게 특이한 환경을 활용해 독특한 건물을 만들었다. 돌 박물관이라는 이름처럼 돌을 오차 없이 깎은 뒤 쌓았다. 그 결과 별도의 벽 마감을 할 필요가 없이 돌이 쌓인 구조 자체가 장식이 된다. 멋진 발상을 통해 재료와 맥락과 건축술이 절묘한 균형을 이뤄 아름다움을 만들어낸 경우다.

한국에도 해당 지역 환경을 고려한 건축이 생기고 있다. 건축가 김찬중이 설계한 울릉도의 리조트 ‘코스모스’가 그 예다. 코스모스는 울릉도의 지형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너무 높지 않게 디자인되었다. 공법 역시 눈이 많이 오고 물류 수송이 극도로 제한되는 울릉도의 상황에 맞춰 초고강도 콘크리트(UHPC)를 적용해 철근 없이 건물을 만들었다. UHPC는 철근을 넣지 않기 때문에 곡선 등 더 전위적인 외형의 건물을 만들 수 있으니, 이 경우도 지형지물을 조건 삼아 공간 솔루션을 낸 셈이다.

로컬리즘은 라이프스타일, 마케팅, 브랜딩의 교집합

로컬리즘 트렌드는 건축에서만 보이는 게 아니다. 지역의 특수성은 그 지역에만 있으므로 마케팅 포인트로 연결될 수 있다. 전국 각지에 로컬 감성 카페가 생기고, 로컬 감성을 활용하는 팝업스토어가 생기는 이유다. 서울과 대구의 대표적인 카페들을 백화점 안에 입점시킨 더현대 대구가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침대 브랜드 시몬스의 팝업스토어는 청담동에서 운영하며 부산의 맛집을 입점시켰다. 상시 운영되는 공간이 아닌 팝업스토어로 로컬리즘을 강조한 셈이다.

지역에서 생활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들은 이것을 ‘나다움’이라고 여긴다.

로컬리즘이 왜 파급력이 있을까. 수요와 공급이 맞기 때문이다. 수요는 뭔가 새로운 걸 제시하려는 각종 사업주다. 쇠퇴한 지역을 새로 개발하는 데 토건 사업을 시행하는 것보다는 로컬 콘텐츠를 동원하는 게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지역 인구가 줄어드는 시대에 어떻게든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야 하는 각종 지자체에게도 로컬리즘은 훌륭한 대안이 된다. 이에 맞춰 새로운 ‘로컬 힙’도 꾸준히 유입된다. 사업자 입장에서 로컬리즘은 단독 원천 기술이 아니라 자신만이 가진 특별한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로컬리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가늠하는 것도 공간과 트렌드를 읽을 때 하나의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WRITER   |  CY PARK
PHOTOGRAPHERS   | 307STUDIO  환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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