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으로서의 예술의 독창성과 신선함을 가지는 것.’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의 사전적 정의다. 단어의 정의를 곱씹어보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파트 이미지와 썩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간 아파트의 찍어내기식 건설 방식, 그로 인한 삶의 획일화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리지널리티’란 단어를 더욱 단단하게 논의의 중심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 김치호 치호앤파트너스 대표의 생각이다. 그 아파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 그 브랜드만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파트의 명예 회복을 위한 첫 단추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메세나폴리스 57평형
김치호 치호앤파트너스 대표는 다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을 포착해 공간으로 솔루션을 만드는 디자이너다. 2012년 이태원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알려진 디스트릭트 상공간 인테리어, 합정역의 랜드마크가 된 메세나폴리스 주호 설계로 디자인계 안팎에서 주목을 받았고 현재도 여러 용도의 공간을 아우르며 사용자의 행태를 분석해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아파트의 오리지널리티란 그곳만의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입지적 조건에서 얻는 특징을 잘 분석하고, 내적으로는 입주자 개개인의 독창적인 삶의 무드를 유연하게 담을 수 있는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 오리지널리티를 찾는 방도가 되겠습니다. 저는 거주자의 개성을 잘 흡수하는 집이 진짜 좋은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주자의 개성을 잘 흡수하는 집이
진짜 좋은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테리어는 트렌드를 내보이는 창구이기에 그 변화의 양상이 다채롭고 또 빠르게 전개되는 것 같습니다. 요즘 티핑 포인트라고 느껴지는 변화가 있나요?
저는 공간 디자이너이다 보니 요즘 등장하는 공간을 통해 대중의 생각을 읽는 편입니다. 단적으로 과거에는 강력한 공간의 아우라를 만드는 일이 우선이었다면 이제는 사람들의 니즈를 반영하는 쪽으로 흐르는 것 같습니다. 어떤 마감재를 고르느냐의 문제보다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할 것입니다. 반가운 변화입니다. 특히 아파트 설계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죠. 저는 약 10년 전에 GS건설 디자인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이런 논의가 막 싹트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때도 아파트가 그간 유지해온 유형과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었으니 사십시오’라는 자세를 재빨리 걷어내고 저마다의 삶의 방식이 녹아들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요. 그것이 집으로서의 본질적 가치를 찾는 길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바라고 했죠. 저는 아파트에 자유로운 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로운 혁명’이란 전략은 어떻게 실제 가치로 표현될 수 있나요?
2012년 완공한 주상복합아파트 메세나폴리스의 57평형, 59평형 두 가지 타입을 디자인할 때 일입니다. 그때는 전형적인 평면 유형이란 게 정해져 있었습니다. 현관에 들어서면 바로 거실이 있고 거실 옆에 안방이 있는 식으로. 평이한 구조였죠. 저는 더 공간감이 느껴지고 깊이감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거주자의 시간을 쪼개보거나 거주자의 유형을 다르게 설정해봤습니다. 가령 낮과 밤의 일상을 구분한 공간 구성을 하거나 두 세대가 함께 거주한다는 가정을 하고 각 세대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평면을 기획해보는 겁니다. 또 욕실에 통유리창을 설치해 욕조에서 한강을 바라볼 수 있게 하거나 마스터베드룸에 확장할 여지를 두는 식으로 고정관념을 깨는 데 주력했습니다. 거주자가 또 다른 상상을 펼칠 수 있는 요소를 남겨두는 것이죠.
얼마 전 유튜브 자이TV를 통해 계룡자이를 리뷰하기도 했습니다. 10년 만의 변화로 보기에 어떤 점이 눈에 띄었나요?
굉장히 진보한 솔루션이 많아 내심 크게 놀랐습니다. 다이닝 테이블을 마주한 벽면 일부에 통유리창을 설치해 바깥 전망을 실내로 끌어들이거나, 긴 아일랜드를 배치해 주방의 기능성과 심미성을 높인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즘은 요리를 하더라도 취향을 가꾸고 문화를 즐기는 측면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런 배경에서 봤을 때 각 요소마다 사용자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디자인했다고 느껴졌습니다.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이 중요한 이유군요.
예전에는 집을 잠자고 쉬는 곳으로 여겼다면 이제는 다릅니다. 거주자의 의지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하는 측면이 강해졌습니다. 가령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서 집이란 사무실, 학교, 아틀리에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요.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요청에 따라 제2, 제3의 용도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아파트는 거주자의 의지를 흡수해 최대한 각자의 스타일대로 바꿀 수 있는 유연함을 갖춰야 하는 숙제가 생긴 셈이지요.
어떤 질문을 하면 그 대안을 찾는 데 도움이 될까요?
‘이런 집이면 살고 싶겠다’라는 목표로 접근하기보다 ‘이 집이 어떻게 유연하게 바뀔 수 있을까’라는 식으로 물으면 문제가 조금 더 분명해질 것 같습니다. 저는 클라이언트에게도 그 사람의 취향이나 선호하는 스타일을 묻지 않습니다. 다만 살면서 무엇이 부족했는지, 어떤 것에 감명받고 어떤 가치를 존중하는지를 묻습니다.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듣고자 합니다. 취향은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 있거든요. 결과적으로 아파트를 계획할 때 공동체가 지향하는 공동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찾고,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꼭 거창한 목표가 아니어도 됩니다. 넉넉한 수납공간, 다양한 빛의 선택권도 예가 될 수 있습니다.
또 무엇을 관찰하면 좋을까요?
사람의 행동을 분석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현대인들이 침대를 벗어나 다시 침대에 눕기까지 일과가 어떻게 되는지, 어떤 경로로 일터에 가고, 학교에 가고, 또 어떻게 여가 시간을 보내는지 그 라이프를 읽고 분석하면 독창적인 제안에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그저 ‘예쁜 집’이란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을 돕는 집, 필요한 집을 디자인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사명이고 앞으로 건설사가 지향해야 하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오리지널리티’라는 단어를 강조하시는데 ‘아파트’와 ‘오리지널리티’는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을까요?
먼저 입지 분석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파트의 오리지널리티’라면 그 지역에서 그 아파트가 갖는 가치를 말합니다. 부동산 가치를 떠나서 입지적 조건 말이죠. 그 조건에서 거주를 위한 최상의 컨디션을 기획하다 보면, 예를 들어 창문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창문 크기는 어느 정도가 좋은지를 분석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그 땅에서, 각자의 시선에서 가질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가 분명히 생길 것입니다. 그다음은 입주자가 ‘자신’의 집으로 전환할 수 있게 만드는 오리지널리티입니다. 입주자에 따라서 이렇게 바뀔 수도 있고 저렇게 바뀔 수도 있는 가능성 말이죠. 확장이 아니라 활용의 여지를 적극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어떤 마감재를 고르느냐의 문제보다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할 것입니다.”
공간의 만족감에 관해서는 인테리어의 역할이 큽니다. 아파트 인테리어는 어떤 측면을 특히 고려해야 할까요?
어떤 공간이든 조화로움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거실, 안방, 주방 등 각 공간별로 멋을 부리려고 하기보다는 일관된 톤 앤 매너를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재료, 색채를 만나도 융화될 수 있는 마감재를 찾는 작업도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아파트 주호 설계를 한다면 어떤 디자인을 해보고 싶나요?
동선이 한 방향으로 형성된 집 말고 동선이 순환하는 집을 기획해보고 싶습니다. 실내와 실외가 결부된 집 말이죠. 아파트 구조에서는 쉽지 않은 도전이나 지금 이 시대에 아파트에 필요한 혁명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웃음)
Editor | SH Yoon
Photography | SI Woo
Film | JY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