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난하다’, ‘평범하다’는 말이 칭찬으로 여겨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남들과 비슷하다는 것은 자신만의 색깔이나 취향이 분명치 않다는 말로 해석된다. 우리 사회에는 개인의 취향이 수많은 갈래로 나뉘는 ‘N극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통상적인 평균의 기준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는 이런 현상을 ‘평균 실종’이라 표현했다.
평균 실종 시대, 산업 전반에 걸쳐 다수의 보편적인 취향을 맞추기보다는 N명의 소비자가 지닌 N개의 취향을 맞출 수 있는 개인 맞춤형 서비스가 강화되고 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나만의 특별함’을 추구하는 젊은층이 늘어나면서 ‘나만의 향수’, ‘나만의 도마’ 등 맞춤형 제품을 만들어주는 업체가 성업 중인 이유다. 사실 각 분야 전문가들은 엔데믹 이후 뉴 노멀(New-normal), 즉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기준이나 표준이 생길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 예상을 엎고 더 개인화된 세상이 온 것이다.
자유 여행에 패키지 여행 콘셉트 한 스푼
여행 업계에도 이 트렌드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여행 관련 온라인 예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익스피디아(Expedia) 그룹에서 최근 발간한 <여행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여행 트렌드는 한 가지로 획일화되지 않으며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완전히 다양화된 여행이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노노멀이다. 자유로운 일정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여행자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자유 여행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노노멀 여행에는 여행사가 기획한 일정대로 움직이는 패키지 여행다운 콘셉트가 한 스푼 정도 포함된다.
각자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독특한 경험을 원하는 것과 더불어 2023년 여행객들의 뚜렷한 경향은 저렴한 가격에도 높은 품질을 만족시키는 ‘가성비’ 여행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전 세계 여행객의 약 25%가 2023년에는 예년보다 더욱 검소하게 여행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으며, 4성급 이상 호텔에 대한 검색 역시 눈에 띄게 감소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하나라도 확실히
17개국 여행자와 여행 업계 전문가, 익스피디아 그룹의 자체 데이터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직후엔 전 세계 해변과 산악지대 등 자연으로 여행객이 모여들었다면, 올해부터는 주요 도시 등 문화의 중심지와 고품질의 휴식과 독특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휴양지, 요리 시설이 잘 갖춰진 숙소를 빌려 현지 식재료를 직접 조리해 먹을 수 있는 미식 여행 등이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여행 전문 미디어 <콘데나스트 트래블러>가 소개한 2023년 여행 트렌드 18가지 안에도 이색적인 여행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럭셔리 요트를 타는 여행, 슬립 투어리즘(숙면에 도움을 주는 숙소나 액티비티), 자기 계발 목적의 심화 교육 여행 등의 색다른 테마 여행이 올해의 주요 트렌드로 소개되었다. 즉, 노노멀 여행은 전통적인 여행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완전히 자신의 취향과 관심 테마에 맞춰 여행을 계획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내 여행 업계도 노노멀 여행
작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한국관광공사의 국내 여행지 추천 서비스 ‘여행콕콕’은 국내 여행 분야에서 보다 정확한 개인 맞춤형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AI, 빅데이터 기반 서비스다. 여행콕콕은 한국관광공사의 4만여 개 여행지 정보와 민간의 빅데이터, ‘대한민국 구석구석’ 사용자의 활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여행지를 알려주는 ‘AI 콕콕’, 여행 목적과 상황에 맞는 여행 코스를 추천하는 ‘AI 콕콕 플래너’, 관광 빅데이터 정보로 분석한 실시간 지역별 인기 여행지와 맛집을 알 수 있는 ‘핫플콕콕’ 등 3가지 서비스로 구성된다.
국내 여행 업계에서도 보다 다양해진 여행객들의 취향을 맞추기 위한 특색 있는 노노멀 여행 상품을 앞다투어 선보이고 있다. 인터파크트리플은 ‘콘셉트 트립’ 카테고리를 마련해 마라톤 전문가와 함께 떠나는 마라톤 대회 여행이나 클라이밍 여제 김자인 선수와 함께 하는 암벽 등반 여행 등 참신한 맞춤 패키지를 제공한다.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스페인, 독일의 작은 마을을 여유 있는 일정으로 돌아보는 참좋은여행의 ‘작은 마을 여행 시리즈’도 눈에 띈다.
트레킹 전문 여행사 모니무슈는 뚜르드몽블랑, 안나푸르나 등 직접 가볼 수 있을 거라고 쉽게 생각하지 못했던 전문 트레킹 투어 지역에서 베테랑 전문 가이드와 함께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여행 상품을 선보였다.
지역의 특색을 살려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키는 국내 여행 상품도 눈에 띈다. 강원도관광재단이 취미 여가 플랫폼 ‘프립’과 함께 진행하는 ‘취미하이패스 강원ROAD’가 대표적이다. 강원도에서 즐길 수 있는 7가지 테마(미식, 커피, 예술, 환경, 사진, 캠핑, 트레킹)의 취미 여행에는 강원도에 거주하는 해당 분야 전문 크리에이터가 스토리텔러로 참여해 여행과 체험을 이끈다.
탄소를 다량 발생시키는 해외 항공 여행에 대한 거부감을 지닌 여행객을 위한 친환경 여행 역시 개인의 성향을 존중하는 노노멀 여행 트렌드를 잘 보여주는 여행 상품이다. 롯데관광개발이 루프트한자와 함께 개발한 ‘컴펜세이드(Compensade)’ 패키지는 개별 여행자가 항공 여행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미리 확인해 지속 가능한 항공 연료(SAF, Sustainable Aviation Fuel)를 구매하거나 다양한 글로벌 기후 보호 프로젝트에 참여해 탄소 사용을 줄이는 탄소 보상 여행 프로그램이다. 현재는 결제 금액 일부를 SAF 구매에 쓰는 ‘컴펜세이드 SAF’와 나무심기 등 환경 보호 활동에 기부하는 ‘컴펜세이드 기후 보호 프로젝트’ 두 가지뿐이지만, 앞으로 친환경 여행 상품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불확실한 시대, 확실한 취향을 만족시키는 노노멀 여행
많은 전문가들이 2023년을 세계 여행 경기 회복의 해로 예측하고 있다. 노노멀 여행 트렌드를 예측한 익스피디아 그룹 역시 올해를 ‘회복의 원년’으로 관측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한 2020년 이후 전 세계 여행 업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매출이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엔데믹 직후에는 억눌러온 여행 욕구를 분출한 여행객이 여행 산업을 유지하는 산소호흡기 역할을 했다면, 앞으로는 해외 여행과 비즈니스 여행이 본격화하며 여행 산업을 부양시킬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엔데믹 이후에도 불확실성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전쟁의 위험, 높은 물가, 국가 간 정치적 분쟁과 입출국 절차의 잦은 변동성 등 외부적인 불안 요소가 개인의 여행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이런 불확실성 역시 노노멀 여행 트렌드가 주목받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따라서 2023년의 여행은 가야 하는 이유와 목적이 분명한 여행,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꼭 해보고 싶었던 분야를 보다 깊게 체험하는 여행이 주를 이룰 것으로 예측된다. 거기 더해 노노멀 여행 트렌드에는 좀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개인화된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의 바람 역시 투영되어 있다. 자유로운 개인 여행과 패키지 여행의 장점을 결합한 노노멀 여행 트렌드의 등장이 반가운 이유다.
WRITER | KY CHUNG